편견에 내쫓긴 한센인… 악취·발암물질에 갇혀 산다 [한센인에게 낙원은 없다]

도내 정착마을 6곳, 현재 163명 거주
평균연령 80세… 고령화에 쇠락 가속
3년 전 권익위 권고에도 석면 건물 여전
道 “열악한 환경 개선 방안 지속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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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유동수 화백

 

정부의 격리 정책과 사회적인 편견으로 형성된 한센인 정착마을에서 살고 있는 경기도내 한센인들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 열악한 주거환경에 방치된 채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국민권익위원회가 한센인의 권익보호를 위해 정착마을 환경을 개선하도록 권고한 지 3년 가까이 됐지만 여전히 1급 발암물질인 석면 폐건축물이 방치돼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4일 한국한센총연합회 등에 따르면 경기도내 한센인 정착마을은 양주 천선마을, 포천 장자마을, 남양주 성생마을·협동마을, 양평 상록마을, 연천 다온마을 등 총 6곳이다.

 

과거에는 불치병으로 알려져 치료나 보호를 받을 수 없어 온갖 피해와 차별을 받아야 했던 한센인들이 정부의 정책 등으로 경기도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정착마을을 형성한 것이다. 현재 경기지역 한센인 정착마을에 살고 있는 한센인은 총 163명으로, 평균연령은 80세다.

 

①(맨 위)한센인 정착마을 중 하나인 양주시 천성마을에 있는 한 돌벽이 무너져 방치돼 있다. ②(왼쪽)양주시 천성마을에 있는 한 폐창고의 모습. ③(오른쪽)양평군 상록마을의 한 집 폐가의 모습. 오종민기자
①(맨 위)한센인 정착마을 중 하나인 양주시 천성마을에 있는 한 돌벽이 무너진 채 방치돼 있다. ②(왼쪽)양주시 천성마을에 있는 한 폐창고의 모습. ③(오른쪽)양평군 상록마을의 한 폐가의 모습. 오종민기자

 

정착마을 거주민들의 고령화와 축산 폐업 등에 따라 폐가 및 폐축사가 방치되는 등 환경개선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나오자, 지난 2021년 국가권익위원회는 전국의 한센인 정착마을을 대상으로 환경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이를 토대로 ‘한센인 권익보호 및 정착촌 환경·개선 종합대책’을 마련해 관계 중앙부처 및 관할 지자체에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도내 6개 지자체 모두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당시 권익위는 양평군 상록마을에 있는 폐축사 7동에 2천15㎥에 이르는 석면 물량이 추정된다고 경고했지만, 경기일보 취재진이 방문한 상록마을은 지적받은 폐축사를 포함해 곳곳에 1급 발암물질인 석면 폐축사가 방치돼 있었다. 또 다른 지자체에 문의한 결과,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개선 권고를 받은 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사업이나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국민건강 피해 방지를 위해 노후 석면슬레이트 주택의 철거 처리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고 있지만, 철거 후 개량하기 위한 추가 비용이 훨씬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무용지물이다. 이마저도 무허가 건물이 많은 한센인 정착마을 특성상 지원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길용 한국한센총연합회장은 “정부의 차별 정책으로 형성된 한센인 정착마을이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며 “대부분 고령의 취약계층인 만큼 유해물질과 악취 개선뿐 아니라 기본적인 생활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경기도 관계자는 “한센인들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 전문가제언 한센인 정착마을의 새로운 방향, “소외된 섬 아닌 함께 사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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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립 한센인권변호인단장

 

지난 20년간 한국 한센인권변호인단을 이끌어온 박영립 단장은 한센인들이 안정적인 생활환경을 누리기 위해선 각 마을별로 얽힌 토지 소유권 문제, 사회적 낙인 등 다양한 현실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단장은 “60~70년대 한센인들이 정착마을을 만들면서 대부분 축산업에 종사하거나 일부는 염색 가공업과 같은 공장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왔는데, 현재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서 남은 폐축사와 폐공장 등 잔해들이 마을에 그대로 남아있다”며 “주거지 또한 당시에 지어진 집들이 대다수라 석면 플레이트, 악취, 개보수가 어려운 집 등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가권익위원회의 실태조사 이후 현실적으로 당면한 토지 소유권 문제나 예산 문제 등을 확실히 짚고 넘어갈 필요성이 있었다”며 “한센인 정착마을이라는 개념 자체에 낙인과 편견이라는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에 생활환경을 개선하려고 해도 주변의 반대에 부딪히는 등 뿌리 깊은 차별적인 인식이 남아있는 것도 걸림돌”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다만, 정착마을마다 직면한 문제들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주거환경 및 생활환경 개선에 나서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각 마을마다 엮인 문제의 매듭을 풀어가지 않으면 앞으로도 권익위의 권고는 실효성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와 지자체, 시민사회 등이 계속 관심을 가지고 목소리를 내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박 단장은 정착마을의 주거 및 생활 환경 개선뿐 아니라 한센인들이 사회와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내놨다.

 

그는 “정착마을은 육지의 소록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만의 경우 한센인들을 위한 정착마을을 따로 구분해서 두지 않고 기존 주민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며 “한국도 정착마을로 구분 지어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책에 불과하다. 한센인들이 우리 사회와 어울려서 살 수 있는 주거 및 생활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제 한센병은 적기에 치료받으면 완치될 가능성이 높고 전염력도 낮다”며 “정부 및 지자체 차원에서 한센병이 전염성이 높은 무서운 병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한센인들의 인식과 차별 해소를 위한 노력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한센인들에게 밝은 빛을 비춰주는 진정한 의미의 주거 및 생활 환경 개선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 지자체의 의지와 더불어 우리 이웃과의 적극 교류를 통해 차별과 인식을 해소해 나가는 것”이라고 당부했다.

 

●관련기사 : 폐가·폐축사 뒤섞인… 위기의 한센인 마을 [한센인에게 낙원은 없다]

https://www.kyeonggi.com/article/202409245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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