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숙 분당제생병원 감염내과 실장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을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나들이나 운동, 야외에서의 활동이 잦아진다. 야외 활동과 함께 가을철에는 열성 질환의 발생도 증가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을철에 유행하는 주의가 필요한 대표적인 급성 열성 질환으로 쯔쯔가무시병, 유행성출혈열(신증후군출혈열), 렙토스피라증 등이 있다.
쯔쯔가무시병은 털진드기 유충을 매개로 하는 질병이다. 이 질환은 우리나라에서 1986년 이후 지속적으로 높은 빈도로 발생하고 있으며 가을철 급성 열성 질환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다. 관목 숲에 살고 있는 매개충인 털진드기의 유충이 사람의 피부에 우연히 부착되면서 조직액을 흡인하게 되는데 이때 쯔쯔가무시가 인체 들어가면서 감염이 발생한다.
1~2주의 잠복기를 거쳐 고열, 오한, 두통, 피부 발진 및 림프절 비대가 나타나며 피부 발진은 발병 후 5~8일경 몸통에서 시작해 사지로 퍼진다. 이때 간비종대, 결막충혈 등의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쯔쯔가무시병은 진드기에게 물린 부위에 가피(eschar)가 형성된다. 가피는 유방 밑, 겨드랑이, 서혜부 등에서 흔히 관찰된다. 중증으로 진행할 경우 기관지염, 간질성 폐렴, 심근염 등이 생길 수 있으며 수막염 증세가 나타나기도 한다. 독시사이클린이나 아지쓰로마이신과 같은 항생제를 적절한 시기에 사용해 치료하면 사망률은 급격히 감소한다.
유행성출혈열은 한탄바이러스에 의한 발열, 출혈, 신기능 장애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급성 전염성 질환이다. 들쥐나 집쥐의 폐 또는 배설물에 있는 바이러스가 사람의 호흡기로 들어가면서 발생하는 질병으로 호흡기로 전파되기 때문에 예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1년 이후 매년 수백명의 환자가 신고되고 있고 치명률도 7% 정도로 높은 질병이다. 늦가을인 10~11월경 주로 발생한다. 잠복기는 평균 2~3주이며 급격히 발현되는 고열과 오한, 결막 충혈이나 출혈, 안와 주위의 부종, 안면 홍조, 두통, 안구통, 늑척추각 압통, 연구개, 액와 등의 점상 출혈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열이 발생하고 혈압이 저하된 후 소변이 감소하는 증상이 연이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보통 이러한 과정이 2주 정도 나타난 후 회복이 되지만 저혈압이 나타나거나 소변이 감소하는 동안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사망하거나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렙토스피라증은 감염된 야생동물이나 가축의 소변이 사람의 피부나 점막에 닿아 발생하는 질병이다. 직접 동물과 접촉하지 않더라도 감염된 동물의 오줌에 오염된 젖은 풀, 흙, 물 등과 점막이나 상처 난 피부가 접촉할 때 감염될 수 있다. 특히 농촌에서 태풍이나 홍수로 인해 쓰러진 벼를 세우는 작업을 할 때 집단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7~11월 자주 발생한다. 잠복기는 7~12일이며 대부분의 경우 약간의 발열 증상만 나타나지만 증상이 심한 경우 고열, 오한, 두통과 뇌막 자극 증상, 발진, 포도막염, 근육통과 더불어 폐렴이나 간부전, 신부전 및 심근염이 발생하기도 한다. 렙토스피라증은 일반적으로 사망률이 낮지만 연령이 높을수록 사망률이 증가한다. 황달이나 신장 손상이 있는 경우 주의 깊게 치료하지 않으면 20% 이상의 사망률을 보인다.
가을철 열성 질환은 예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예방을 위해 다음의 사항을 유의해야 한다.
쯔쯔가무시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유행 지역 및 관목 숲에 가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 또 야외 활동을 할 때는 되도록 긴 옷을 입어 유충이 피부에 부착되지 않도록 하고 곤충 기피제를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진드기에 물린 상처가 있거나 피부 발진이 있으면서 급성 발열 증상이 있다면 쯔쯔가무시병을 감별하기 위해 반드시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유행성출혈열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유행 지역의 산이나 들판에 가는 것을 가급적 피하고 야외에 갈 때에는 긴 옷을 입어 피부를 보호하는 것이 좋다. 풀밭에 눕거나 자는 것을 피하고 귀가 시에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고 몸을 깨끗이 씻는 것도 중요하다.
렙토스피라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가을철 농경지 주변의 고인 물에 손발을 담그거나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야외 작업을 할 경우 장화나 장갑 같은 보호구를 착용하고 상처가 있는 맨살에 젖은 풀, 흙이 닿지 않도록 주의한다.
가을철에 발생하는 열성 감염은 초기 증상이 단순 감기와 유사하기 때문에 진단과 치료가 늦어져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가을철에 유행 지역으로 여행을 한 후 원인 모를 열이 발생할 경우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 조기에 진단과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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