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나타나는 것들이 있다. 한계치에 도달하면 폭발해 새로운 별들을 탄생시키는 ‘플랑크의 별’처럼 말이다.
사라지면서 나타나는 가능성, 불완전함 속에서 움트는 창조의 순간을 담아낸 전시가 열렸다. 경기도미술관은 오는 10월20일까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주목하는 ‘사라졌다 나타나는’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선 스스로 시작과 끝을 열어가며 낯섦과 새로움을 동시에 모색하는 작가 6팀의 작품 32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태양의 ‘빛’과 ‘색’을 담은 최지목 작가의 작품들이 눈길을 끈다. 최 작가는 태양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나타나는 잔상과 태양 빛을 캔버스에 담아 ‘나의 태양’ 연작, ‘태양 그림자’ 연작, ‘인상, 일몰’ 등의 신작을 펼쳐보인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잔상을 집요하게 관찰해 한 가지 색상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오묘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모양으로 화면의 어른거림을 만들어냈다.
거울 매체를 활용한 강수빈 작가는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 인지하는 것과 실재의 차이를 돌아보게 한다. 개별 거울 조각이 여러 각도에서 공간감을 확장해 시선에 따라 변화하는 환영을 무한히 만들어내는 식이다. 특히 긁혀있는 거울 면으로 작품을 구성해 거울과 유리 사이로 서로 다른 풍경이 겹치며 환상과 풍경 사이를 탐구한다. ‘Untitled(두 걸음 사이)’, ‘Untitled (curve)’, ‘Media’ 등을 통해 상대적이고 불확실한 생각과 그런 생각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선과 생각을 제안한다.
장서영 작가는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한계가 있는 존재에 주목해 다양한 영상과 설치 작품을 선보였다. 장 작가의 작품은 육체, 삶, 제도, 제한, 세계의 한계, 신체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공간에 이르기까지 유한함을 인지하고 느끼게 한다. 작품 ‘서클’은 지속적으로 탐구해 온 신체와 반복의 키워드를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다. 영상의 끝과 시작을 무한히 반복해 ‘나’의 끝이 ‘너’의 시작이고 ‘너’의 끝이 ‘나’의 시작인 우리 관계와 삶의 순환을 돌아보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외에도 이번 전시에선 소리의 특성과 여러 층위를 탐구한 그레이코드, 지인의 신작 ‘파이퍼’와 하나의 돌 덩어리가 낱낱이 부서져 작아지고 소멸하는 과정을 통해 영겁의 시간을 포착한 권현빈 작가의 ‘물루’를 볼 수 있다.
또 여러 공간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녹여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구성하고 원동력을 부여한 이혜인 작가의 ‘마음의 영원한 빛’ 등을 만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선영 학예연구사는 “불완전함은 결함이 있는 상태이면서 동시에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상태”라며 “관객들이 작가들의 고유함이 녹아든 작품을 보며 그 속의 새롭고 낯선 의미들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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