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철 수원시립미술관 학예전시과장
지금 수원시립미술관에서는 국내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프랑스 추상화가 올리비에 드브레의 대규모 개인전 ‘올리비에 드브레: 마인드스케이프’가 열리고 있다. 드브레는 아름다운 성과 루아르강이 흐르는 프랑스 투르의 자연을 사랑했다. 차에 캔버스와 유화도구를 항상 싣고 다니며 마음에 드는 풍경 앞에서 그림을 그렸다. 작가는 새로운 풍경과 빛을 발견하기 위해 전 세계를 여행했다. 특히 미국을 여행하며 만난 색면추상화가 마크 로스코의 영향으로 드브레의 작업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색채와 자유로운 행위적 표현으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완성했다.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알로이스 리글은 1902년 발표한 ‘네덜란드 집단초상화’라는 저작물에서 “예술은 감상자의 지각적, 감정적 개입 없이는 불완전하다”고 언급했다. 리글이 ‘관찰자의 참여’라고 말한 이 관점은 이후 에른스트 크리스와 에른스트 곰브리치의 연구에서 더욱 발전됐다. 그들은 예술작품은 본질적으로 모호하므로 그것을 보는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특히 곰브리치는 그의 대표적인 저서 ‘예술과 환영’에서 ‘관람자의 몫’을 매우 중요하게 다뤘다.
‘관람자의 몫’을 과학적으로 접근한 학자가 있다.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신경과학자이자 뇌과학과 미술의 연계점을 연구한 저술가인 전 컬럼비아대 교수 에릭 캔들이다. 캔들은 미술작품에 대한 해석과 감상자의 작품에 대한 반응의 메커니즘을 뇌과학적 시각으로 분석했다.
우리는 눈을 통해 입수한 시각정보를 뇌에 기억시키면서 일련의 처리 과정을 거친다. 시각정보가 충분치 않더라도 뇌는 자체적으로 재구성해 지각하고 기억한다. 또 우리의 뇌는 기억을 위한 시각정보의 재구성 과정에서 기존에 저장돼 있는 정보들, 개인적 경험들 그리고 감정과 연계시키고 범주화시킨다. 캔들은 형태가 해체돼 모호하기 그지없는 추상회화를 볼 때에도 감상자는 왜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되는가를 설명한다.
이처럼 감상자의 역할이 주체가 되는 관점에서라면 추상미술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 오히려 어려운 일은 나의 기억과 나의 생애 경험과 나의 내면의 감정을 무심한 작품의 표면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 정신적, 지적, 정서적 여유를 가지는 일이다. 더 나아가 작품이 주는 개념과 맥락, 그리고 세밀한 감정을 감상자 스스로 연주하고 감동할 수 있는 ‘상위 수준의 해석 능력’을 갖추는 일이다.
작가의 고뇌와 고민이 담긴 작품은 거기에 그대로 있을 뿐이고 작품의 해석은 오롯이 감상자의 몫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자의 몫’이야말로 최고의 지적 사치이자 어떤 약물로도 대체될 수 없는 삶의 도파민이다. 작가가 캔버스 위에 표현한 화면이 추상적일수록 감상자의 역할은 비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 몰입의 공간을 제공하는 드브레의 작품이 감동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