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호박넝쿨이 가는 길

호박넝쿨이 가는 길

                                 전원범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호박넝쿨 앞에 대나무로

다리를 놓아 줍니다.

 

호박넝쿨도 말이 없지만

할머니의 뜻을 알고

그리로 기어갑니다.

 

할머니가 놓아 준 길

호박넝쿨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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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투데이

 

손바닥만 한 땅이라도 노는 땅이 있으면 그냥 두고 못 배기는 게 할머니들의 땅 사랑이다. 꽃이든 나물이든 뭐라도 심고 가꿔야 사는 맛을 느낀다. 이는 가난했던 옛날에도 그랬고 좀 산다는 요즘에도 그렇다. 타고난 여성의 DNA 탓일 것이다. 이 동시 속의 할머니는 집 안 어딘가에 호박씨를 심은 모양이다. 그러고는 호박 줄기가 타고 올라갈 대나무 사다리까지 놓아준다. 호박 넝쿨은 할머니가 놓아준 사다리를 말없이 기어오른다. ‘할머니가 놓아 준 길/호박넝쿨이 가는 길’. 할머니와 호박 넝쿨의 관계가 참 아름답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차리고 따른다. 시인은 인간과 식물의 소통을 동심의 그릇에 담았다. 이 동시를 읽다 보니 언젠가 한 방송국에서 보여준 법정 스님의 하루가 떠올랐다. 스님은 아침마다 근처 산을 둘러보며 나무며 풀들과 눈인사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또 산새며 다람쥐와도 아침 인사를 잊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서 만나는 온갖 것들과 함께 살아가는 게 곧 삶의 행복이란 말씀도 빼놓지 않았다. ‘관계’가 곧 행복이란 말씀이었다. 우리 사회도 이 동시 속의 할머니와 호박 넝쿨처럼 아름다운 소통이 곳곳에서 이뤄졌으면 참 좋겠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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