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8일까지 ‘무지의 기억이 열리다’ 이번 전시를 위한 신작 10점도 눈길 ‘복원 테마’ 부서진 흔적 창작의 원천 다음 달 11일엔 ‘재탄생: Recycling’
어느 것 하나 성한 게 없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어느 곳, 해안의 한 지점, 그 곳에 버려졌거나 떠밀려 온 쓰레기 더미들이 서로 합쳐지고 새 옷을 입어 재탄생했다. 본연의 모습을 없애는 작업이 아니다. 일본 설치미술가 아오노 후미아키(56)는 빈 땅이나 해안 등에서 주워 온 폐기물의 파손된 파편에 고정, 연장, 붙이기, 수리 등의 기법을 적용해 재생과 복원을 한다. 버려진 것들이 내재한 일상과 감정, 기억이 작가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화성 엄미술관에서 지난 4일 개막한 아오노 후미아키의 개인전 ‘무지(無知)의 기억이 열리다’에선 사물의 순환- 수리- 변용을 다룬 작가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지난 2014년 아라리오 갤러리 전시(환생, 쓰나미의 기억)에 이어 한국에서 10년 만에 선보이는 전시다.
작품은 아라리오 컬렉션에서 들여온 45점, 작가가 한국에서 작업한 10점이 전시됐다. 전시는 이전 생활에 대한 기억이나 상실의 흔적들을 관객에게 상기시키며 사물에 대한 무지(無知)의 기억이 열리도록 한다.
낡고 부서진 옷장과 테이블은 연결되고 색칠돼 배의 모양이 됐다. 부서진 옷장과 장롱은 폐기처분된 트럭과 연결돼 새로운 이야기를 품었다.
전시를 위해 미술관에서 며칠 지내던 작가는 수원대 후문과 미술관 뒷산 인근을 돌며 부서진돌과 버려진 봉지 등을 채집해 작품을 만들었다. 깨진 조각, 먹다 버려진 빼빼로 상자, 버려진 커피 플라스틱의 일부, 깨진 유리병은 다른 재료와 연결돼 본래의 기억을 안은 채 복원됐다.
작가는 1990년대부터 일관되게 ‘파괴’, ‘재생’, ‘순환’의 과정을 다루는 ‘복원’을 주제로 작업해왔다. 가구나 자전거, 일용품 등 각기 다른 것을 접합·복원하는 과정에서 그것에 깃든 타인의 기억을 마주하고, 지식이나 상상력으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 그 기억을 드러낸다. 사라지거나 부서진 흔적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아 ‘수리’라는 형태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살핀다.
매해 전시에 기후 위기와 환경에 관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지역 미술관의 역할을 해온 엄미술관의 고뇌와 작품의 진열과 배치는 복원을 통해 이야기를 품은 예술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부서진 트럭이 옷장과 결합된 작품의 뒤편에선 벤치에서 잠시 앉아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평소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던 옷장의 뒷모습을 살펴보고 작품을 다양한 각도에서 재밌게 바라볼 수 있는 요소를 만들었다.
미술관에서 진행한 전시 연계 프로그램도 열린다. 5월 11일 오후 2시에 열리는 프로그램 ‘재탄생: Recycling ’에선 아오노 후미아키가 재해로 버려진 수많은 물건을 수집해 과거의 기억이 공존하는 새로운 생명을 가진 물건으로 복원했듯,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재활용품으로 과거의 기억이 담겨있는 새로운 의미를 지닌 창작품으로 만들어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진희숙 엄미술관장은 “아오노의 전시를 통해 폐기물이 예술로 변모되는 과정을 접하면서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고, 나아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이번 전시와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미술관 역시 지역사회의 문화 예술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6월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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