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총선이 현수막 쓰레기만 남긴 채 끝났다. 300여만 장에 1천700t 규모라 한다. 또 남은 것이 있다. 급하게 쏟아놓은 공약들이다. 갈수록 공약들이 거창해져 간다. 인천에서도 그랬다. 문제는 이번에도 그냥 해 본 말이겠지 하는 시민들 냉소다.
이번 인천 선거 공약은 거대 담론으로까지 진화했다. ‘공간 재구조화’가 대표적이다. 인천시민 삶의 터전을 다시 짜겠다는 얘기다. 철도나 고속도로를 땅 밑으로 집어넣겠다. 군부대를 들어내고 개발하겠다. 이런 공약들을 여야 없이 사이좋게 공유했다. 그래서 공약으로는 다툼이 없던 선거이기도 했다.
공약집 맨 앞 장에 경인국철(경인선)·경인고속도로 지하화가 있었다. 허종식 의원(동·미추홀구갑)은 경인선 지하화에 맞춰 역 주변 복합개발을 약속했다. 지역구인 원도심의 공간 재구조화 구상이다. 이웃 선거구의 윤상현 의원(동·미추홀구을)도 약속했다. 경인선을 지하화하고 녹지와 주거복합시설, 공영주차장을 짓겠다고 했다.
경인고속도로 지하화와 인천대로 개발은 서북부 지역 단골 공약이다. 김교흥 의원(서구갑)은 인천대로 방음벽을 철거하고 숲길을 내는 ‘인천대로 파크시티’ 구상을 내놨다. 지하도로 상부에는 첨단산업·복합쇼핑·문화예술 거점으로 키울 것이란다. 유동수 의원(계양구갑)도 경인고속도로 지하화의 조기 추진을 약속했다.
노종면 당선인(부평구갑)과 박선원 당선인(부평구을)은 군부대 이전을 통한 부평 재창조를 공약했다. 노 당선인은 캠프마켓 자리에 지하 경인선의 환승센터와 주차 허브를 짓겠다고 했다. 박 당선인은 1113 공병단 부지에 복합쇼핑문화시설을 약속했다. 일부 주민 반대에 대해서는 공청회로 풀어갈 것이라고 했다.
이들 사업은 이미 정부도 첫발을 떼 놓은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해당 지역들과 철도 지하화 협의체도 발족했다. 경인고속도로 지하화는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의 예비타당성조사에 들어가 있다. 문제는 천문학적 규모의 사업비 조달이다. 지화화에는 최소한 경인선 6조~9조원, 경인고속도로 3조원이 필요하다. 재정사업으로는 사실상 어렵다. 민자사업도 상당한 국비가 필요하고 부동산 경기가 사업성을 좌우한다. 그러나 당선인들 공약집 어디를 찾아봐도 재원 조달 방안은 전무하다. 가장 중요한 ‘어떻게’가 빠진 약속들이다.
이런 생각도 해본다. 앞으로 선거를 거듭하다 보면 죄다 지하화하는 것 아닌가. 조금 걸리적거리는 인프라는 지하로. 그래서 햇빛도 바람도 없는 땅 밑으로만 다닐지도 모르겠다. 한때 그토록 공격받았던 ‘토목 정치’가 되살아난 것도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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