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中 톈안먼 민주화 시위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1989년 오늘이었다. 이 나라의 수도 한복판으로 대학생 등 젊은이 수만명이 모여 들었다. 이들은 정권을 향해 개혁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당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군부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유혈 진압에 나섰다.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 민주화 시위 얘기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위를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를 제대로 알려면 당시로부터 10년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나라에선 1980년부터 10여년간 개방정책이 펼쳐졌다. 건국 후 수십년간 국경을 봉쇄했던 사회주의 국가로선 이례적이었다. 상하이와 선전, 칭다오 등 바닷가에 위치한 대도시들부터 외국 기업 진출을 허용했다.

 

그런데 이 기간 숱한 문제점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먹고사는 형편은 조금씩 나아졌겠지만 특권층 부패는 심화됐다. 결국 국민 불만의 첫 번째 타깃이 됐다. 경제 과열에 따른 인플레이션과 소득 격차에서 오는 불만 등도 상승 효과를 냈다.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톈안먼 광장 시위 이후 중국은 세계 여론의 빗발치는 비난과 경제 제재 조치 등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당시 시위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에 대한 체포와 숙청까지 단행했다.

 

중국 공산당은 그해 6월23일부터 이틀 동안 제13기 중앙위원회 1차 전체회의를 열고 자오쯔양 지지 세력을 제거하는 등 권력을 개편했다. 이 회의에서 정치국원 겸 상하이 시 당서기 장쩌민이 자오쯔양의 뒤를 이어 신임 총서기에 선출돼 리펑·장쩌민체제가 출범했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는 중국은 물론 동북아 및 세계 질서에 일대 충격을 몰고 왔다. 사회주의 국가 젊은이들의 시위가 미친 영향은 지구촌에선 결코 작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나라에선 미미했다.

 

반성이 없으면 역사는 되풀이된다. 중국이 이 사태 이후 뼈저리게 자성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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