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영국의 여성 인권운동과 여성 참정권의 의미

한민주 영국 유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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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8일은 1975년 유엔이 공식적으로 지정한 세계 여성의 날이다. 여성의 날은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들이 용감하게 쟁취한 정치, 경제, 사회적 업적을 국제적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1909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국 여성의 날이 선포된 것에 고무돼 1910년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체트킨이 코펜하겐에서 국제 여성의 날을 제안한 것으로 유럽에도 여성의 날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여성 인권운동의 역사에서 여성이 얻어낸 아주 최소한의 평등한 권리를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 예는 바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투표권의 인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참정권이 최초로 주어진 것은 약 130년 전인 1893년 뉴질랜드에서였다. 대한민국에서는 광복 이후인 1948년에, 다른 선진국들 또한 20세기가 넘어서야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당연한 권리인 참정권이 여성에게 주어진 것이 이제 겨우 100년 넘었다는 것은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매우 긴 시간 동안 목숨을 걸고 싸워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영국은 여성 참정권 운동의 대표 국가다.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1850년대부터 시작됐다. 에멀린 팽크허스트는 20세기 초 이 운동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1903년 여성사회정치연맹(WSPU)을 조직해 온몸으로 투쟁했는데 그 당시 이런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을 ‘참정권’이라는 뜻의 ‘suffrage’ 와 여성형 접미사 ‘-tte’를 합친 ‘suffragette(서프러제트)’라 불렀다. 수많은 서프러제트들이 싸웠지만 그중에서도 에밀리 데이비슨이라는 여성은 1913년 더비 경마대회에서 당시 국왕인 조지 5세의 경주마에 몸을 던져 사망함으로써 여성 참정권 운동에 가장 강렬한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장례 행렬이 자연스럽게 시위 행렬이 되면서 세계적으로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언론화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1928년 긴 시간 끝에 영국 의회는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참정권을 승인했다.

 

대한민국의 여성 인권운동과 참정권운동이 영국 같은 나라들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일제의 식민지가 되기 바로 이전까지 여성들은 뿌리 깊은 유교문화로 인해 인권운동은커녕 최소한의 교육조차 받을 수 없었다. 조선시대 여성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교육은 소혜왕후가 엮어 만든 여성의 행실에 대해 다룬 ‘내훈(內訓)’이라는 교양서를 읽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식민지 시절 그 누구보다도 나라의 독립과 여성의 인권을 위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투쟁한 수많은 여성들이 있었기에 현재 대한민국 여성의 인권과 민주주의는 존재하는 것이다.

 

현대 여성이 오늘날 당연하게 누리는 여성의 권리는 이렇듯 전 세계 여성들이 목숨을 건 투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구조적으로 남성 중심인 사회에서 내재된 성차별을 겪고 있으며 특히 이슬람 문화권에서의 여성 인권은 지금도 처참하다. 우리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면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여성의 권리와 참정권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한 여성들의 노력을 기리고, 그 의미를 더 깊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앞으로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투쟁을 멈춰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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