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3•1절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

황보영 경기동부보훈지청 복지과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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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은 대한제국이 칼과 총을 찬 일본 헌병들에게 무참히 짓밟히고 일제의 수탈이 시작된 지 10년이 되던 해이며 대한제국의 고종 황제가 원인불명으로 승하한 이후 일본인의 독살설이 퍼지면서 조선인들의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던 시기였다. 한편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선언, 레닌의 약소 민족 독립 지원 발표는 가혹한 식민지배하에 놓인 조선인들의 독립 의지를 가속화했다. 이후 도쿄에서의 2·8독립선언과 함께 수많은 독립선언서와 태극기가 비밀리에 인쇄됐으며 마침내 1919년 3월1일 토요일, 평화 시위가 시작됐다.

 

그간 받아온 핍박과 울분을 되새기며 우리 조상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고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만세시위는 참가자 121만1천978명, 부상자 4만5천163명, 사망자 6천821명이라는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 3·1운동은 우리의 독립 의지를 표방하는 것에 그칠 뿐만 아니라 중국의 5·4운동, 인도의 무저항 비폭력주의운동 등 약소 민족의 독립운동에 큰 발판이 됐다. 우리 조상의 숱한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조국을 되찾기 위해, 민족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후손의 미래를 위해 목숨 걸며 장렬하게 싸우셨던 순국선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더 큰 보상과 예우를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순국선열들의 뜨거운 외침을 기억하며 그들에게 진심을 담아 가슴 깊이 애도하고 존경심을 가지며 시민의식을 높여야 한다.

 

3·1절을 기념해 게임기와 SNS를 잠시 내려놓고 가족들과 함께 독립운동과 관련한 영화를 보거나 독서를 하며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내가 과연 저 상황이었다면 일제의 총칼에 맞서 만세운동을 하고, 고문을 견딜 수 있었을까?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오늘날 우리의 일상은 그분들의 희생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이야말로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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