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천하’ 이주여성協, 10년 넘게 나눔 활동 중국어 강의·전통 악기 등 배움터 문 ‘활짝’ 소외 아이들 교육·中 문화 정체성 확립 도와 “이주민과 교류 확대… 온기 가득한 사회로”
누군가의 삶에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온정을 나누는 건 수많은 약속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다. 자신이 받았던 도움을 잊지 않고 다시 돌려주자고 다짐하며 스스로와 했던 약속, 지금의 나눔을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가며 기꺼이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겠다는 약속, 받은 도움을 잊지 않고 또다른 나눔으로 되살려 온정을 전달하겠다는 약속. 이처럼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나눔은 수많은 어제와 오늘의 약속을 타고 내일의 나눔으로 연결된다. 중국 이주 여성으로 이뤄진 정만천하 이주여성협회도 마찬가지다. 낯선 땅 한국에서 받았던 도움을 잊지 않았고, 자신의 것을 내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지금은 70명이 참여하는 협회를 꾸린 이들을 만나 2024년, 또 한 번 사회를 훈훈하게 할 나눔의 약속을 들어봤다.
■ 낯선 땅 한국에서 받은 것, 다시 나누겠다는 약속
정만천하 이주여성협회 회원들은 한국에 처음 왔던 그때를 잊지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살기 위해 한국을 찾았지만, 처음에는 의사소통도 되지 않았고 다른 문화에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당장 한국에서 먹고살기 위해 생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지만, 외국인이기 때문에 받아야 했던 이유 없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받아들이기엔 너무 차가운 현실이었다.
이런 이들에게 이웃들은 먼저 다가와 손을 건넸다.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며 알려주기도 했고, 한국어를 빨리 익힐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공부를 도와준 이웃도 있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이웃들이 곁에 있었다. 그때의 따뜻함은 지금도 이들의 가슴 속에 남았다. 언젠가는 꼭 이 온기를 나누겠다는 약속과 함께.
그렇게 2013년 협회가 만들어졌다. 한 명 두 명 이주여성들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주변 이웃을 도와보자’며 약속을 지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은 움직임은 10년이 넘는 시간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 만두 나눔에서 시작한 봉사, 공부방으로 커갔다
처음 협회가 한 봉사는 만두 나눔이었다. 만두에 있어서는 세계 제일이라 할 수 있는 곳에서 나고 자란 만큼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만두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직접 만두를 만들고는 어르신들이 모인 경로당, 홀몸노인, 끼니를 제때 챙기는 못하는 이웃들까지 구석구석을 찾아가 만두를 전달했다. 처음 만두를 받고 기뻐하는 이웃의 모습은 이들이 다음 나눔을 약속하게 하는 큰 계기가 됐다.
그렇게 협회는 꾸준히 반찬 나눔 봉사를 하며 약속을 지켜갔다. 그렇게 장시간 이어진 나눔에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반갑게 맞이하며 어울리는 사이가 됐다. 그러던 이들은 또 다른 약속을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우리가 처음 겪은 문화적 차이를 또다른 누군가는 겪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가장 먼저 대상으로 삼은 건 아이들이었다. 중국인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지만,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아 학교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되는 아이들을 위해 힘을 모은 것. 여기에 중국어를 배우고 싶은 주민들과 중국인이지만 한국에서 더 오래 살아 자신의 뿌리를 찾고 싶은 이들까지 모두 모아 공부방을 만들었다.
매주 주말마다 중국어부터 한국어, 중국문화까지 가르쳐 주겠다고 했던 약속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제 말을 배우기 시작한 네 살 어린아이부터 가정주부인 40대까지 한자리에 모여 강의가 이뤄진다.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중국어 맞춤 교제를 제작하고 중국 현지인을 초청해 중국어를 배우기도 했다. 이 시간이 끝나면 중국 악기와 중국 전통춤을 배우는 시간도 매주 진행되고 있다.
■ 2024년에도 변치 않는 약속... ‘한국 속 작은 지구마을을 만들겠습니다’
정만천하 이주여성협회는 2024년, 더 큰 약속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을 넘어 다양한 국가 이주민까지 함께하는 단체를 만들어 더 많은 이들에게 나눔과 언어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꿈이다.
이른바 ‘한국 속 작은 지구 만들기’라는 이 프로젝트는 베트남, 필리핀, 네덜란드 등 다양한 국가의 이주민들과 만나면서 그들의 문화를 지켜주고 이들이 한국 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것들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중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의 문화를 교류하면서 지구촌을 하나로 잇는 민간 외교관의 역할을 해보자는 최종 목표도 정했다.
왕그나 정만천하 이주여성협회장은 “매일 만나는 이들과 행복한 약속을 하고 있다. ‘또 만나자’는 작은 약속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고 우리 역시 기쁨을 느끼고 있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이들과 새로운 약속을 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인터뷰 길남주 한사랑 길봉사단장 “나눌수록 배가 되는 행복, 소외 없는 지역 만들겠다”
“앞으로도 모두가 행복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14년째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 길남주 한사랑 길봉사단장(57)은 2024년을 소박하면서도 특별한 한 해로 만들기 위해 이렇게 약속하고 싶다고 했다.
길 단장 역시 처음 나눔의 길로 들어서게 된 건 자신이 받은 도움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약속 때문이었다. 과거 사업에 실패하고 생계가 어려웠던 길 단장에게 이웃들은 기꺼이 자신의 손을 내어줬다. 그렇게 그들의 손을 잡고 일어선 길 단장은 이를 잊지 않고, 꼭 주변 이웃들에 환원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길 단장은 2010년부터 파장동 바르게살기운동위원회와 지역사회보장협의체, 화홍로타리클럽 등에 들어가 미혼모 신생아 돌봄, 청소년 선도 캠페인, 사랑의 밥차 봉사, 보육원 재능기부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눔을 실천했다. 그는 “여러 활동에 지치고 힘들 때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내가 전한 온기가 다시 나에게 돌아올 때 느끼는 기쁨은 그 이상의 것으로 다가온다”고 설명했다.
길 단장은 지난 2015년부터는 새로운 분야에서 자신의 약속을 실천했다. 수원특례시와 의왕시 일대 홀몸노인과 취약계층을 상대로 도배, 페인트칠 등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집수리 봉사’를 병행하게 된 것. 이는 행복이 시작되는 곳이자 행복이 커가는 곳이 ‘집’이라는 믿음에서였다.
길 단장은 이제 봉사가 자신과의 약속을 넘어 자신에게도 행복으로 돌아오는 인생의 목표가 됐다고 했다. 그렇기에 길 단장은 그 따뜻한 온기를 놓지 못하고 계속해 새로운 약속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는 “봉사와 나눔은 하면 할수록 행복해진다”며 “소외받고 있는 어려운 사람들이 저로 인해 희망을 찾을 수 있다면 계속 약속하고 지켜 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2024에는 현재까지 해온 봉사들을 계속 하면서 마을 봉사 활동가들을 육성할 계획”이라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해 소외되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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