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의 감정은 왜 생겨날까? 잘은 몰라도 사랑은 인간이 오묘한 감성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증거가 아닐까?
사랑은 사람이 있는 곳 어디에서나 생겨난다. 지금 이 순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사랑은 피어나고 진다. 인종과 민족의 경계도 넘고, 시간(나이)과 거리의 개념도 극복할 수 있다. 사랑은 참 마법 같은 인간의 감정임에 틀림없다.
거의 모든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랑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다. 아마 사랑 전에 사연이 먼저일 수도 있다. 남녀가 만나 눈빛이 오가고 사랑이 진행되는 사연은 밤하늘에 별보다도 많을 것이다. 소중하지 않은 사랑은 없다. 사연도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다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정숙 작, 권호성 연출의 수원시립공연단 트로트 뮤지컬 ‘아빠의 청춘’에 등장하는 사랑도 애틋하고 소중하다. 인생풍파 다 겪은 박영감과 연안댁의 사랑. 이혼의 아픔이 있는 큰아들과 외국 여성의 사랑. 등산 중에 만나 애정을 키운 장여사의 사랑. 우여곡절을 넘기고 사랑의 꽃을 피운 박영감과 연안댁이 노래한다. “사랑이 별거드냐 좋아하면 사랑이지 이래저래 정이 들면 호박꽃도 꽃이란다….”
‘아빠의 청춘’에는 호박 같은 서민의 삶이 있고 호박꽃 로맨스가 있다.
“쩔쩔 끓는 삼복염천/…척박한 땅에/뿌리를 박듯 좌판을 벌여놓고/아무튼 열심히 사는(중략)./(호박꽃·임영조)
호박의 일생도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 땡볕에도 뿌리와 덩굴을 이어가는 생명력.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덩굴손. 호박엿, 호박잎, 호박나물 등 모든 것을 주고 가는 뒷모습. 화려한 주목은 못 받지만 늘 한결같고 은은한 멋이 있는 노란 꽃.
연출자는 사랑의 리듬을 잘 만들어 내고 줄을 잘 타는 능숙한 춤꾼이다. 뮤지컬 전체에 느슨하면서도 촘촘한 오선지의 그물을 펼쳐 놓았다. 또 팽팽하면서도 매끄러운 리듬의 추를 달아 놓았다. 리듬의 씨줄과 가사의 날줄은 출연자들의 사연과 어우러져 호박꽃 로맨스를 만들어낸다. 슬픈 사연에는 느리고 절절한 리듬과 음악, 그리고 애절한 가사로 관객의 눈물샘을 터뜨린다. 기쁜 사연에는 경쾌한 리듬과 흥겨운 노래로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아빠의 청춘’에는 끈끈한 가족의 정도 있다. 물질만능주의와 노인 경시를 꼬집고 외국인과 함께하는 삶도 있다. 갈등도 있지만 서로 이해하는 포용도 있다. 그래서 ‘아빠의 청춘’은 달달한 호박엿과 구수한 호박찌개가 있는 호박꽃 로맨스다.
무대 전환 또한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작은 공간에서 원형으로 이동하는 배치 동선과 배우들이 한 호흡으로 부드럽게 전환하는 기술이 돋보였다. 웃으며 손뼉 치며 두 시간이 넘는 공연시간이 후딱 지나갔지만 압축미가 더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빠의 청춘’은 끝났지만 사람 냄새나는 호박꽃 로맨스는 세상 어디서나 피어날 것이다.
“연분이 따로 있나…호박꽃도 꽃이란다….” 콧노래를 부르며 공연장을 나오는 나에게 아내가 옆구리를 꼬집으며 한마디 콕 찌른다. “당신 예전에 나한테 호박꽃이라고 말한 거 기억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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