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신문사는 1986년에 일본 내외 유식인 100인에게 2001년의 일본경제의 모습에 대한 경제예측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한국인으론 조순 서울대 교수와 필자가 초대 받아 동 설문조사에 참여했다. 조사문항 중 2001년의 일본엔 대 달러 환율 예측치에 대한 질문이 있었는데 50인이 100엔 미만으로 예측했고 필자는 80엔이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 2000년에 엔화가 1달러에 114엔에 이르렀고 2008년의 미국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에는 엔고가 극에 달해 77.8엔까지 치솟았다.
어쨌든 일본 엔화는 1971년의 이른바 닉슨쇼크로 1달러 360엔에서 300엔으로 대폭 절상됐고 다시 1985년의 플라자 합의에 따른 2차 엔절상 압력으로 86년엔 160엔, 87년엔 123엔으로 치솟았다.
이 같은 일본엔화의 초 강세는 일본경제를 견디기 힘들게 했다. 미국의 대일무역 적자 누적과 경상수지 적자 누적으로 일본경제를 견제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과도한 절상이었다. 아무리 일본 경제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그러한 과도한 엔절상은 일본 경제가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일본 경제는 넘쳐나는 경상수지 흑자로 자본유출이 불가피했고 그에 따른 무모한 해외 부동산 투자로 엄청난 손실을 봤다. 또한 거액의 해외 금융자산 투자도 계속적인 엔 절상으로 막대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본은 엔고 불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대적인 금융완화 정책과 대형 긴급재정 조치로 급속한 호황으로 치달았으나 제때 긴축정책을 펴지 못해 경제거품을 유발, 일본경제를 깊은 수렁에 빠지게 했다. 폭등한 주식과 부동산이 후에 폭락함으로써 역자산효과를 일으켰고 일본경제는 가계, 기업, 금융기관이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이 여파로 일본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의 인고의 시절을 겪었다.
미국은 대일무역 역조를 해소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엔화의 절상을 압박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는 데는 실패했다. 일본의 엔화가 아무리 절상돼도 일본의 대미무역이 적자를 이룬 적은 한 해도 없었고 여전히 거액의 흑자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즉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이 엔고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실패로 잃어버린 30년의 불황을 겪긴 했어도 일본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결코 줄지 않았다.
예를 들어 2000년에 달러화는 114.4엔이었는데 일본의 대미 무역흑자는 662억달러였고, 2011년에는 77.8엔이라는 초 엔고에도 대미 무역흑자는 522억달러에 달함으로써 일본의 무역흑자는 난공불락의 성임이 입증된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초 엔고에서 초 엔저로 즉 77.8엔에서 150엔 대로 회귀했으니 대미무역 흑자는 더욱 커질 것 같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인 가나모리 히사오는 1987년에 한국이 머지않아 미국과 일본에 대해 무역흑자를 이룰 것으로 예측했으나 미국에만 2000년대에 들어 흑자로 반전했다. 2022년에는 280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했지만 일본에게는 현재까지 단 한 해도 무역적자를 면해본 적이 없고 극도의 엔고에도 거액의 무역적자를 이어갔다. 즉 최고의 엔고일 때도 300억달러 가까운 적자를 냈고 2022년에는 241억달러 적자로 총무역적자의 51%를 점했다. 지난 57년간 대일 무역적자 누적액은 7천억달러에 달했다. 아직도 우리의 가전, 자동차 등 주요 소비재는 일본시장을 뚫지 못하고 중요 원자재, 기자재 등은 여전히 일본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 여행수지마저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초 엔저시대로의 회귀는 우리의 영원한 숙제인 대일무역적자 해소를 더욱 어렵게 할 것 같아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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