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운명론 ‘인생의 8할은 운이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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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운 가평군청 자치행정과 국제협력 주무관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에서 기원한 운명론은 소포클레스에 의해 ‘오이디푸스왕’이라는 희곡으로 발전해 서구문명의 원형이 됐다. 인간의 자유 의지에 의존하지 않고 운명의 굴레에 속박돼 비극으로 치달을 때 흔히 운명론을 거론한다.

 

나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믿고 운명론을 거부한다. 그래서 운칠기삼(運七技三·운이 7할, 능력이 3할)이라고 할 때도 동조하지 않았다. 인간의 노력이 대부분이고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해 2할 정도 운이 작용해 사업이 성공한다면 그 정도는 수긍하고 싶다. 그런데 갑자기 광명의 21세기에 운명론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불을 지핀 사람은 홍콩과학기술대 김현철 교수가 최근 발표한 베스트셀러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는 인생 성취의 8할이 운이라고 했다.

 

그는 왜 그런 주장을 했을까?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운명에 몸을 맡기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일까?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의 “태어난 나라가 평생소득의 절반 이상을 결정한다”와 같은 결로, 김현철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만으로도 우리는 세계 20% 안에 들어가는 운 좋은 사람들이고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가 나머지 소득의 30%를 결정하고 여기에 부모가 주는 환경까지 고려하면 개인 성취의 80~90%는 운이다. 그리고 개인이 노력할 수 있는 건강도, 집중할 수 있는 환경도 부모의 영향이 크다.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고 부자가 된다고 하는 주장을 들으면 안타깝다. 성공의 대부분이 운이니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실패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운이 나빴을 뿐”이라고 했다.

 

또 사회학자 조형근이 최근 일간지에 게재한 칼럼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상승 이동의 사다리가 끊겼다는 탄식이 가득하다. 예전에는 어려운 환경에도 제 힘으로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합격하고 계층 상승하는 사례도 많았지만 이제는 어렵다고 한다.

 

경제학자 주병기 교수의 개천용 기회불평등지수는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그러면서 그는 ‘같은 출발선’과 ‘기회의 공정’ 등 공정한 경쟁을 언급했다. 그러나 이러한 공정한 경쟁도 운이 8할이고 능력이 2할이라면 합리적인 성공이 가능할까. 모든 것이 예정돼 있다는 예정론이나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세습이 좌우한다는 세습제 모두 문명의 발전은 퇴보시킨다. 나는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의 위대함을 믿는다. 운이기팔(運二技八·운 2할, 능력 8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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