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약의 사전적 의미는 조직체 안에서 서로 지키도록 협의 후 정해 놓은 규칙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법적인 구속력 없이 구성원끼리의 약속과 같은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규약의 예를 들면 상부상조 정신을 바탕으로 마을의 대소사나 주민 관계에 대해 마을 구성원끼리 정해 놓은 향약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주택 중 71%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공동주택은 건물의 소유자가 구분돼 있으며 전통 마을의 가구수와 비교할 수 없는 다수의 주민이 살고 있다. 공동주택에는 현대적 공동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정을 약속하기 위해 ‘관리규약’이 존재한다. 도시 속의 공동주택이 하나의 마을 개념으로 볼 때 과거 마을 사회의 자치 규약인 향약에 뿌리가 있다 할 수 있다.
오늘날 공동체 의식 붕괴에 따른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부족으로 이웃 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 경기도 소방 반복 민원 처리 건수는 911건으로 이 중 대다수는 이웃 간의 갈등 및 생활 불편 등을 호소하거나 복도(통로) 및 계단에 물건을 두는 행위에 조치를 요구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민원 해결을 위해 현장을 마주하면 만만찮은 경우가 많다. 복도에 고추를 말리고 있어 치워 달라는 요청, 공용현관에 쓰레기통을 치워 달라는 요청 등 각양각색이다. 현장 조치를 하다 보면 이웃 간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껴진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이들이 대화 몇 마디에 금세 화해하는 식의 웃지 못할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이웃집 상황을 자세히 알거나 서로 친한 관계라면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에도 상대방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르니 사소한 것도 용납 못하겠다는 정서에서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갈등이 불거졌을 때 공동체 내부의 중재와 조정 등으로 해결하는 것이 원만한 갈등 해소의 지름길이 아닐까?
이웃 간 갈등을 관(官)의 개입으로 일거에 풀 수 있는 완전한 해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갈등은 공동체의 신뢰가 회복되고, 그 안에서 주민들의 자체적 화해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기존 제도나 정부 기관의 개입만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
공동주택에서 발생하고 있는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입주민 스스로 ‘함께하는 삶’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집단의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화돼 있으면서 밀집돼 있는 독특한 집합 주거 시대를 맞아 공동체의 바람직한 모습, 입주민의 태도, 행동 원칙 등이 규정된 ‘공동주택관리규약’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시급하다. 공존의식 함양을 위한 가장 기본적 실천은 입주민들의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수라고 믿는다.
이 규약의 원류가 공동체 정신인 향약에 있다는 점에서 선조들이 지향하고 실천하던 가치가 어느 순간 각자도생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현대 한국 사회에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비록 오래전 선조들이 실천했던 형식을 재현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현대 사회에 맞는 모습과 방식으로 재해석하면서 실천하면 오늘날 모습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어릴 적 느티나무 그늘에 어르신들이 모여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이 그리워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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