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어반스케치] 화성 융릉 개비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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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많이 지쳤다. 밤새 음식 준비에 온 힘을 다한 것은 조상에 대한 예도 있지만 아들 며느리와 딸 사위를 위한 사랑에 더욱 힘을 낸 것 같다. 불평은커녕 즐겁고 좋아서 한 듯하지만 피곤해 보인다. 아침에 아들 내외가 왔다. 다 차려진 아내의 정성스러운 음식으로 추석 차례를 마쳤다. 일단 모두가 한숨을 잤다. 점심시간을 훨씬 넘겼지만 고단한 아내를 더 이상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교외로 나가기로 했다.

 

명절 때마다 주로 가던 융·건릉이다. 푸른 소나무 잎과 상수리나무 잎이 폐부를 활짝 열어준다. 녹색 잔디밭과 파란 하늘에 갈대밭도 초가을의 서정을 이룬다. 흐린 눈을 맑게 닦아주는 기분이다. 내려오는 길에 아늑한 재실에 들렀다가 천연기념물 개비자나무를 봤다. 거칠면서도 화려한 나무 비늘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문득 내장산의 비자나무와 비슷한 레바논산맥의 백향나무가 생각났다. 그곳의 백향목 군락은 꿈속처럼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백향목은 레바논 국기에도 들어있지만, 성경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사용했던 나무라고 알려졌다. 눈 덮인 레바논산맥의 브샤레 마을에서 본 칼릴 지브란의 생가미술관도 기억에 남아 있다. 예언자를 쓴 그는 글도 글이지만 그림도 정말 좋았다. 예언자의 집을 나와 나는 히치하이크에 성공해 백향목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융릉의 비자나무는 조금 변형된 같은 과라 해서 개비자나무라고 붙여졌지만 순수한 시골 총각처럼 맑은 색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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