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DSR 규제 완화의 위험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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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환 인하대 경영학과 부교수

가계대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 기간 중 차주의 채무 상환능력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취급된 대출이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에 따라 급속히 부실화되고,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그 규모도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역전세에 처한 임대인들이 전세 보증금 반환목적으로 대출을 받는 경우 소득을 고려해 대출 한도를 정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역전세 위험 세대는 전체 전세 계약 중 약 52.4%(102.6만 호)에 해당하며, 각 임대인은 평균 7천만원의 보증금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 총 역전세 계약을 기준으로 하면 약 70조원이 넘는 금액이다. 정부는 보증금을 반환할 의도를 가진 ‘선량한 임대인’들이 자금난을 겪고 있고, 이것이 결국 임차인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 대출 한도를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정책적 취지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전혀 공론화되고 있지 않지만 이 정책은 향후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전제하고 있다. 만약 향후 집값이 현재 수준으로 유지되면 대출을 받은 임대인들은 추가적인 이득 없이 원리금 상환 부담만을 지게 되고, 현재 보다 하락한다면 여기에 집값 하락에 따른 손실마저 보게 된다. DSR을 적용해 대출할 수 없다는 것은 이들이 소득으로는 대출을 상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집값이 하락하면 정부는 갭 투자한 임대인들에게 소위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을 허용한 셈이 된다. 이러한 대출은 가계대출 부실화를 가속화할 것이다. 반대로, 집값이 상승하게 되면 채무상환 가능성이 생긴다. 이 경우 갭 투자한 임대인들은 더 높은 가격에 부동산을 처분해 대출을 상환하고 부동산 처분으로 자본이득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약탈적 대출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DSR 규제 완화 정책은 결국 향후 집값 상승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이러한 집값 상승에 대한 전제는 매우 우려스럽다. 이러한 우려는 주택매입자금의 원천이 되는 가계대출 규모를 보면 분명해진다. 부동산 거품 붕괴 직전인 1990년 일본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대출이 132%였다. 소득으로 갚을 수 없는 대출로 일본의 부동산 버블이 형성되었다는 증거였다. 우리는 지금 이 수치가 206%에 이른다. 미국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발생했던 2008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대출이 100% 수준이었다. 우리나라는 현재 이 수치가 105%를 넘고 있고, 여기에 전세 보증금을 포함하면 150%에 이르는 수준이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이 빚더미 위에 있으며, 그것이 곧 붕괴할 수도 있다는 위험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지만, 상환 불가능한 가계대출을 방치하거나 이를 오히려 확대하게 되면 금융기관의 건전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지난 수년간, 정부는 채무상환 능력에 기반한 DSR 규제를 적기에 도입하지 못해 이미 우리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가계대출을 늘려 왔다. 동일하게 코로나 사태를 겪었지만, 대부분의 구미 선진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정책적 실패다. 이에 따라, 금융권의 연체율 상승이 점차 현실화하고 있는데, 특히 저축은행과 새마을금고의 연체율은 5~6%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올 1월부터 은행권이 바젤 III 최종안을 적용하면서, 가계대출의 증가는 BIS기준 자본 비율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될 가능성도 커졌다. 새로운 바젤 규제가 기존보다 가계대출을 더 위험한 자산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가계대출 규모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인 우리나라로서는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은 국민의 헌법상 권리다. 이러한 헌법상 권리를 바탕으로 젊은 세대는 가정을 꾸리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정부는 부동산 가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부동산 시장이 투기적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관리할 중대한 책임을 진다. 역전세에 따른 시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것 또한 이러한 책임을 다하려는 정부의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가계대출 관련 위험이 점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DSR 규제 완화는 우리 사회가 부동산 가격을 정상화하고 가계대출을 축소할 기회를 놓치게 하고, 오히려 금융시스템의 위험을 확대할 수 있다. 최근 가계대출 연체율의 상승은 이 문제에 대응할 시간이 우리에게 그리 길게 남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의 비상한 대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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