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웅의 제복

image
이석한 경기도중소기업CEO연합회장

고등학교 시절 교련복은 아주 편했다. 교복은 단정하고 가지런해야지만 교련복은 좀 험하게 입어도 별로 표가 안 나 좋았던 기억이 난다. 교복은 제복의 다른 이름이다. 중고등학교 시절 교복은 부모님을 가장 편하게 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했다. 팔꿈치나 소매가 반질거릴 정도로 입어도 엘리트 교복 한 벌이면 1년 내내 사복을 사지 않아도 버틸 수 있기 때문에 아주 경제적인 의복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제복(制服)은 학교나 관청, 회사 따위에서 정해진 규정에 따라 입도록 한 옷이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정해진 옷차림으로 어느 집단이나 조직에 속한 인원이 그 활동에 참여할 때 입는 옷을 일컫는다. 주로 군대, 경찰, 교정, 소방 등 단체 활동 때 입는데 조직에 속한 사람들에게 소속감과 일체감을 부여하고 외부인과 구별되므로 착용자 개개인의 개성보다는 그 단체의 특성을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진다. 그런 까닭에 획일적이나 전체적이라는 부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했다. 실제로 제복은 일상생활 중 입기는 어렵지만 꼭 필요한 옷이다. 지금 ‘제복(uniformed service)’이란 용어는 군인과 경찰 등 나라를 위해 일하는 분들을 상징한다.

 

지난달 29일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개최된 ‘제2연평해전 승전 제21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기념식에는 제복을 입은 군인들과 순직자 유족, 관련 민간인들이 참석해 그때 상황을 되새기며 국가를 위해 희생한 영웅들의 넋을 추모했다. 가장 감동적인 장면은 순직 해군의 부친이 인사말을 마치고 참석자들을 향해 무대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시는 장면이었다. 영웅의 부친은 21년이 지난 지금도 당장이라도 아들이 앞에 나올 것 같은 느낌이란다. 

 

그러나 그 아들은 산화됐고 국가는 애써 외면해 왔기에 설움이 복받쳤는데 다행히 이제 국가가 아들의 충성과 헌신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감사의 큰절을 올린 것이다. 참으로 가슴 뭉클하고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이런 영웅들의 피로 세워졌고 우리의 안녕과 평화는 그들의 고귀한 희생 덕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는 언제나 그런 영웅들의 희생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6·25 참전용사들에게 ‘제복’을 만들어 드렸다고 한다. 베이지색 재킷과 감색 바지의 제복을 입은 영웅들이 거리를 다닐 때 우리 모두 경의를 표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만시지탄이지만 참으로 잘한 것 같다. 그동안 거리에서 마주치는 조끼 입은 참전용사들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참전용사 조끼를 입고 다니시는 분들을 보면 늘 죄송했는데 무척 다행이다. 얼마 전 부산에서는 참전용사 한 분이 고단한 생활고로 마트에서 젓갈과 참치 캔을 훔쳤다는 소식이 들려와 안타까웠다. 주변에서 폐지를 모으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흔히 듣는 이야기가 됐다. 영웅들에 대한 국가의 소홀함이 그런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해서 씁쓸하다. 

 

올해는 6·25전쟁 73주년이다. 그때 참전한 청년들은 이제 삶을 마감하는 종착역까지 이르셨다. 6·25 참전용사들에게 제복을 통해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명예를 지켜드리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제복이 참전용사와 후손들에게 명예의 상징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경제인의 한 사람으로 마음 놓고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 국가 안보에 헌신하는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그분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경제성장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국가와 국민들이 영웅들을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국가의 운명과 위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세금은 이런 곳에 쓰여야 한다. 이게 나라다운 나라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