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노동시간을 69시간까지 자율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정부가 만지작거리자 야당과 노동계가 엄청난 반발을 했다. 그 결과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재고와 수정을 공지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근로시간은 연간 1천915시간으로 OECD 38개 회원국 중 5위였다. 멕시코가 1위이며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 등 중남미 4개국이 1~4위에 포진했다.
OECD 평균 근로시간은 1천716시간이다. 한국이 OECD 평균보다 199시간 많다. 노동시간의 단축을 요구하는 목소리의 중요 사안은 ‘인간다운 삶’이 주요 화두다. 하지만 근로시간의 축소만이 ‘인간다운 삶’을 구가할 조건이 될지는 의문이다. 조금 더 다른 각도인 철학적 사고로 ‘노동시간 단축’과 ‘의미 있는 삶’에 대해 기술해 보고자 한다.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노동시간을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고 토머스 모어는 그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6시간’이면 족하다고 했다. 지금 모든 노동계나 학계에서 주장하는 근로시간 단축이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이유는 매우 물리적 이유밖에 없다. 그 주장들이 현 ‘일자리정책과 산업구조 안정화’라는 논리를 포용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계속되는 일자리 정책들의 실패와 근로시간 단축의 상관성 연구는 매우 중요한 학계의 과제임에도 단순 숫자적 비교나 이념적 주장은 지양해야 한다. 이는 마치 에피쿠르스의 ‘쾌락주의’를 단순한 육체적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집 ‘랑게르한스섬의 오후’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 참의미가 아마 대중들이 말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깊이의 철학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42.195㎞를 달린 후 마시는 맥주 한 잔. 세탁 후 면 냄새가 나는 속옷을 접어 놓으며 느끼는 기쁨 등 노동시간의 축소, 정확히 노동 유연성에는 선제적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24시간 중 근로시간 8시간을 제외해 물리적 시간들의 풍부함이 과연 자기 만족과 성장이라는 두 화두를 충족시킬지는 부정적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러셀이 말한 ‘게으름’과 수백권의 소설, 수필, 번역을 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소확행’이 근로시간의 단순한 만족과 ‘워라밸’을 부여할 수 있는지는 깊은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즉, 많이 남은 시간을 소비해 버리는 방식의 근로시간 축소는 사회적으로 더 많은 병리적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재독 학자인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피로사회’의 주범이 노동시간의 가중이 아니라 ‘투명해진 사회 속’에서 자기 자신만의 여백을 만드는 연습들의 부재일 수 있다는 주장에 저자는 더 많은 공감을 부여한다.
정량법의 경제 접근 방식은 오히려 다른 형태의 심리적, 병리적 문제인 우울이나 자살 그리고 다양한 중독으로 남아도는 시간을 소비하거나 소득 감소로 다른 형태의 근로시간 증대라는 2차적 사회 문제를 유발할 것이 자명하다. 비전을 만들고 삶을 규제할 줄 아는 지혜와 절제미, 자기 가치를 높여 가기 위한 건강한 시간 사용이 반드시 전제되고 교육된 후 주어진 근로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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