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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종교] 연꽃이 된 소녀의 이야기
오피니언 삶과 종교

[삶과 종교] 연꽃이 된 소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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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스님 불교방송라디오 진행자

옛날 옛적에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사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소녀는 괴로움을 피해 속세를 떠났다. 수도승이 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갔다. 산에서 한 스승을 만났다. 스승이 소녀에게 물었다. “여기에는 왜 왔니?”

 

소녀는 스승에게 대답했다. “괴로움을 피해 여기에 왔습니다.”

 

스승은 소녀를 지그시 쳐다봤다. 그리고 물었다. “이곳이 괴로우면 다른 곳으로 또 피하겠네.”

 

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소녀는 수도승이 됐다. 괴로움을 피해 이곳에 왔지만 이곳조차도 소녀가 상상한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결국 소녀는 환속을 결심했다. 떠나려는 소녀를 향해 스승이 물었다. “여기에서 왜 떠나려고 하니?”

소녀는 스승에게 대답했다. “제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달라요.”

 

소녀는 다시 세상에 내려왔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고, 기쁨도 있었고, 슬픔도 있었다. 수많은 일들을 겪었고, 소녀는 지쳤고, 소녀는 괴로웠다.

 

문득 옛 생각이 났다. 산에 올라 스승을 찾아갔다. 소녀는 여인이 됐고, 스승은 노인이 됐다. 여인은 그저 스승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울면서 외쳤다. “왜 저는 이렇게 괴로울까요.”

 

울음을 그치고 조용해진 여인을 데리고 스승은 연못으로 향했다. 넓은 못가에 꽉 차 있는 화려한 연꽃을 보며 스승은 입을 열었다. “사람들은 여기 와서 저 연꽃을 보며 모두가 감탄을 한다. 그런데 다들 연꽃에만 정신이 팔려 있단다. 너의 눈에는 무엇이 보이니?”

 

“내 눈에는 연꽃의 뿌리가 심어져 있는 저 바닥이 보이는구나. 이 연못은 꽃이 피기 전에는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시궁창이었지. 그리고 때가 돼 꽃이 피면 사람들은 원래 여기가 시궁창이었음을 다들 잊어버리는구나.”

 

눈동자가 일렁이는 제자에게 스승은 말했다. “연꽃은 시궁창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저 시궁창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오르는구나. 자신의 주변과 환경이 시궁창 같을 때 결국 연꽃을 피우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과거에 소녀였고 지금은 여인이 된 그녀는 굳게 결심했다. “나는 이제 저 연꽃같이 되리라.”

 

그녀는 다시 산을 내려갔고 삶이라는 길을 걸었다. 웃는 날도 있었고, 웃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울지는 않았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울지 않았다. 다만 이와 같이 되뇌었다. “이 모든 것은 연꽃을 피우기 위한 과정입니다. 연꽃은 시궁창을 탓하지 않습니다. 나는 꽃을 피울 것입니다.”

 

훗날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기억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밝았던 사람,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 괴로운 사람 앞에서 따스한 위로와 미소를 지어 주던 소중한 사람. 그녀를 알던 사람들은 그녀를 이렇게 기억한다. “이 세상에 연꽃과 같은 사람이었다.”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곳곳에 환한 연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이 세상이 더욱 밝아지기를. 우리 모두 연꽃 같은 사람이 돼 보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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