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참변이 또 일어났다. 일가족 다섯 명이 자기 집에서 한꺼번에 숨진 채로 발견됐다. 열 살도 채 안 된 어린아이들까지 죽어간 참혹한 사건이어서, 관련기사에는 수많은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글도 있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살해하고 본인도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에 대한 비난도 많다. 언론에서 언급하는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고인의 삶을 재단하거나, 이들이 거주하던 지역을 폄하하는 발언도 있다.
인터넷 댓글이 특정 집단이나 지역에 대한 공격의 온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나, 누군가의 죽음까지도 혐오를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빌미가 되는 현장을 보는 것은 여전히 충격적이다. 죽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회는 살아 있는 인간 또한 품위를 지킬 수 없는 곳이다. 장례의식을 인류문화의 시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는 망자를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기억하고 존중하는 것이야말로 동물과 인류를 구분하는 본질적 특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2004년부터 5년마다 자살예방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지난 2월13일에는 제5차 자살예방기본계획 수립을 위한 공청회가 개최됐다. ‘번개탄 생산금지’ 같은 지엽적인 부분이 부각되면서 정작 중요한 내용들은 주목받지 못하기는 했지만, 1차 계획부터 코로나19 시기를 거치기까지 효과성이 검증된 각종 정책을 망라한 계획임은 분명하다. 특히 정신건강검진 확대나 정신건강 치료 지원 같은 정신건강 분야의 과제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자살은 실업이나 빈곤 같은 사회경제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기에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거나 생명존중문화를 조성하려는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1997년 외환위기, 2002년 카드대란, 2008년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는 자살률을 끌어올렸다. 가족 살해 후 자살자의 경우에는 사망 당시 경제 문제를 경험하고 있었던 비율이 높다고도 한다(최진화·박기환·2022년). 이번과 같은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어떠한 경제적 어려움이 생기더라도 최소한 자녀들의 삶은 지속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임을 보여주는 자료다.
무고한 목숨을 해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다섯 명이 생을 마감한 자리에서 가장 먼저 표현돼야 하는 것은 책망이 아니라 애도다. 그다음은 이러한 비극을 막을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다짐이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예의이자 인간에 대한 예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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