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한 거장 감독의 ‘겨울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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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충범 한국영상대 영화영상과 교수

지난주 목요일인 2022년 12월 29일,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고(故) 신상옥 감독의 유작 ‘겨울 이야기’의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아내를 잃은 충격으로 치매를 얻은 노인(신구 분)과 그를 보살피는 며느리(김지숙 분) 사이의 가족애를 다룬 이 영화가 18년간 미공개 상태로 있다가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100년이 넘는 한국 영화의 역사에서 신상옥 감독은 가장 특별한 이력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남한에서 최고의 감독 및 제작자로 활동하다가 납북된 뒤 1980년대에는 북한 영화를 만들기도 한 데다 1950, 60년대 최고의 여배우였던 최은희와의 염문과 결혼, 이혼과 재회, 그리고 동반 탈북이라는 드라마틱한 삶의 여정을 경험한 바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영화’ 같은 생애를 보낸 신상옥 감독이 인생 말년에 남긴 마지막 영화라는 사실만으로도 ‘겨울 이야기’는 대중의 관심과 언론의 조명을 받기에 충분하다. 사연 많은 거장 감독의 손을 거친 어느 한 작품이 후대에 완성돼 일반에 공개되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기에 그렇다.

 

더욱이 지금은 ‘거장(巨匠)’으로 불릴 만한 영화감독이 나오기 쉬운 시대가 아니다. 디지털 영상 매체의 기술적 발달로 인해 누구라도 영상물 제작이 가능해졌고 다양한 콘텐츠가 온라인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영화의 소재와 기법 또한 보다 자극적이면서 감각적인 경향을 띠게 됐다.

 

게다가 코로나19의 영향하에 OTT 드라마가 약진하고 영화의 배급 방식, 상영 체계, 관람문화 등을 둘러싼 전반적인 변화가 일면서, 그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의문이 제기됨은 물론 영화의 종언이 점쳐지기까지 한다.

 

이러한 면에서 ‘겨울 이야기’가 설을 앞둔 18일에 개봉된다는 소식은 반가움을 넘어 기대감을 자아내게 한다. 과거 영화계에서도 ‘명절 특수’나 ‘구정 대목’이라는 말이 유행했을 만큼 추석과 더불어 설 연휴에는 시내 영화관이 흔히 인파로 북적였는데, 진지한 문제의식과 과감한 실험정신을 통해 서사, 주제, 형식적 차원에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선보여온 신상옥 감독의 영화 역시 스크린을 장식하곤 했다.

 

그렇다면 이미 17년 전 세상을 떠난 거장의 유작 속에는 84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과연 어떠한 이야기가 어떻게 연출돼 있을까. 이번 겨울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강추위를 녹여줄 가슴 따뜻해지는 영화 한 편이 벌써 기다려진다. 올 설 연휴에는 오랜만에 극장가를 찾아 한 편의 영화가 선사하는 진한 감동을 느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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