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요한 것은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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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환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새해 들어 정부가 부동산 관련 금융, 세제, 분양 규제를 5년 전 수준으로 되돌려 놓았다. 이러한 규제 완화는 현재 급속도로 냉각된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하지 않고, 최소한의 거래를 이어가는 가운데 하향 안정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정책 방향이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인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려우나,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진보와 보수 정권이 공통적으로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미세조정보다는 큰 변화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책이 세밀하지 못하면 시장 참여자의 과도한 쏠림을 유도하게 되고, 결국 부동산 가격 주기의 폭을 확대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분석과 논의가 있을 수 있으나, 여기서는 부동산 금융에 국한해 몇 가지 단상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대출 규제 완화가 건설사들의 미분양 문제를 완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근거가 강하지 않다. 현재의 미분양은 구매자가 소득으로 부동산 가격을 감당할 수 없게 되고, 높은 금리 때문에 차입을 이용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발생했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과 금리가 변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대출을 확대한다고 해서 해결되기 어렵다. 오히려 부동산 가격과 금리 하락이 미분양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정부는 소위 ‘영끌’을 한 한계 차주의 대출을 이들보다 채무 상환능력이 우수한 실수요자가 받아줄 수 있다면 금융회사로 전이되는 시스템 위험을 차단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낙관론일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높은 금리 수준하에서는 동액의 대출을 인수한 그 누구라도 그 막대한 이자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내 부동산 관련 대출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이며, 올 하반기까지도 금리 인상이 예측되고 있어 그 부담은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이러한 유례 없는 부동산 금융의 규모는 대출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현재의 위기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해 국제적인 금리상승 기조하에서도 한국은행은 국내 부동산 금융의 규모를 고려하여 선제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하지 못했다. 이는 결국 치명적인 한·미 간 금리 역전으로 이어졌다. 현재는 잠시 환율이 안정되기는 했으나 금리 역전 현상이 오래 지속될수록 감당하기 어려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금융권은 현재의 금리 수준조차 오직 잠시 유예된 여유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최근 국토연구원은 주택가격이 1% 상승하면 합계 출산율이 0.014명 감소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거주가 안정되지 않으면 가정을 꾸릴 여유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매우 고통스럽지만 부동산 가격이 충분히 조정되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의 미래 또한 담보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최근 일련의 정부 정책은 부동산 경기의 연착륙 유도라는 목표와 달리 현재의 높은 부동산 가격이 충분히 조정되지 않고, 오히려 부실의 규모를 키우는 원치 않는 결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따라서 현재의 위기는 보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 사회의 구조조정을 이루어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부동산 금융에는 복잡한 정책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대출은 차주가 상환할 수 있는 능력 범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이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영영 과도한 부동산 가격의 주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고, 재앙적인 인구감소 또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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