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돌아가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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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천 아동문학가

‘돌아가는 배’는 섬에서 태어난 소년이 청운의 꿈을 안고 육지에 나가 꿈에 그리던 신문기자로 세계를 누빈 뒤 다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귀향하는 에세이 모음이다. 이를 쓴 이는 한국일보에서 청춘을 보낸 김성우 논설고문.

 

‘나는 돌아가리라. 내 떠나온 곳으로 돌아가리라. 출항의 항로를 따라 귀향하리라. 젊은 시절 수천 개의 돛대를 세우고 배를 띄운 그 항구에 늙어 구명보트에 구조되어 남몰래 닿더라도 귀향하리라.’

 

그의 이 명문은 그가 태어난 섬 욕지도 ‘새천년공원’에 문장비로 새겨져 있다. 남해의 절해고도 욕지도를 세상에 널리 알린 그의 공(功)을 주민들이 잊지 않고 성금으로 화답한 것이다.

 

태어나 보니 섬이었다고 했다. 둘러봐야 온통 바다뿐이라고 했다. 들리는 것이라고는 파도 소리뿐, 사위의 절해, 절대 바다가 그를 가두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죄명 모를 수인(囚人)이었다고 했다. 그의 절망은 여기서만 그친 게 아니었다. 그가 태어난 욕지도는 세계전도 그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막대기를 가져와 욕지도를 출발점으로 직선을 그어 보니 세계 어디든 닿더라고 했다. 시드니, 리버풀, 마르세유, 베네치아, 리우데자네이루, 샌프란시스코.... 막대기는 세계의 어느 항구든 다 닿았다. 소년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섰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든 다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세계로 나아가고자 한 그의 꿈은 그렇게 비롯됐다. 그리고 소년은 마침내 그 꿈을 이뤘다. 프랑스 파리 특파원이 돼 세상을 향해 훨훨 날아간 것이다. 그는 파리 특파원으로 지내는 동안 세계문학의 무대를 직접 찾아가 이를 소개하는 임무에 충실했다. 그리고 언론인으로 청춘을 오롯이 바친 끝에 마침내 자신이 출발한 지점(섬)으로 다시 귀향한 것이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걸친 것 없이 벌거숭이로 선 겨울 속의 가로수들을 보다 문득 떠오른 책이 김성우 선생의 저 ‘돌아가는 배’였다. 사람은 누구나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일 수도 있겠고 자신을 성장시켜 준 고장일 수도 있겠다. 내가 돌아갈 곳은 충북 영동이다. 영동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6학년 초까지 살았으니 나의 어린 시절이 몽땅 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 고향 영동에 가면/거리마다 감나무가 줄지어 선 것을 보시게 될 것이다/그리고 가을이면 그 감나무들이 하나둘씩/환한 등을 내 거는 것을 보시게 될 것이다/그리고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돌아오는 것도 보시게 될 것이다.’-졸시 ‘영동에 가면’ 전문.

 

헤아려 보니 문학의 길에 들어선 지 어느덧 50년이나 됐다. 그 사이에 책도 몇 권 냈고, 상도 몇 개 받았고, 교과서에도 작품이 실렸는가 하면 해외에 책이 수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작품을 꼽으라고 하면 부끄럽기만 하다. 고작 잡어(雜魚) 몇 마리만 싣고 귀향하는 기분이다. 아, 이를 어쩌면 좋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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