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스승이자 벗 신이치 선생 덕에 맺은 인연과 다시 찾은 11월의 일본서 따뜻한 호의에 기대어 홋카이도서 오키나와까지… 맛집·명소 돌며 힐링 사소한 것에도 기꺼이 시간과 마음 내주는 삶 배워
밥상머리 교육을 받던 시절부터 일본 혹은 일본인에 대한 주의사항을 끝없이 들어왔다. 그런데도 지금 가까운 외국인 친구를 꼽는다면 전부 일본인이다. 내게 이렇게나 많은 일본 친구들이 생긴 건 전부 한 사람 덕분이다. 2008년 가을, 나는 “피스 앤 그린 보트(한국의 환경재단과 일본의 피스보트가 아시아의 환경과 평화를 위해 띄운 배)”에서 쓰지 신이치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그는 일본의 환경운동가이자 문화인류학자로 <슬로 라이프> <행복의 경제학> 같은 책으로 우리 나라에도 잘 알려진 분이었다.
우리는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함께 하며 가까워졌다. 그 인연을 시작으로 신이치 선생님은 내 삶의 가장 큰 스승이자 벗이 되었다. 부탄과 일본, 한국을 여행하며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을 함께 쓰기도 했다. 그는 내가 일본에 갈 때마다 놀라운 수준의 “맡기기” 기술을 시전했다. “오키나와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하니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가 치넨 우시 씨에게, “교토를 제대로 둘러보고 싶어요.”라고 하니 교토가 고향인 테리와 마유미 부부에게, “홋카이도에 갈 예정이에요.”라고 했을 때는 말 치료사인 요리타 씨에게 나를 맡겼다.
시모노세키에는 친구 우에노 씨가, 비와코에는 그의 형 코이치 씨가, 마츠모토에는 그의 동생 슌스케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전화 한 통화로 전국의 친구들에게 나를 맡겼다. 처음 만난 이들이 단지 그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환영했다.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거나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가이드를 자처했다. 나는 그런 호의에 기대어 홋카이도에서 오키나와까지 일본 전국을 돌아다녔고, 그의 친구들은 내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사회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이들이었다. 저항할 줄 아는 한국의 문화를 부러워하고, 그로 인해 일본보다는 한국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본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해하는 건 기본이었다. 그들의 극진한 배려를 느낄 때마다 나도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반드시 기억했다가 다음 만남에 선물로 주거나, 내가 좋아하는 곳에 데려가곤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더 나은 사회와 지속가능한 지루를 위해 싸우는 이들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희망의 싹을 키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코로나로 2년 반이 넘도록 문을 닫았던 일본이 지난 10월에 문을 열었다. 나는 동유럽에서 돌아오자마자 일본으로 향했다. 11월의 교토는 따뜻했고, 단풍이 막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친구들의 호의에 철저히 기댄 여행이었다. 마유미는 여행의 프로그램을 함께 짜주고, 식당 예약을 비롯해 온갖 번잡스러운 일을 맡아줬다. 무엇보다 10명이나 되는 우리 일행을 집으로 초대해 일본의 다도를 경험하는 시간을 선물했다. 신이치 선생님은 사흘간 우리와 함께 다니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나라의 시골 마을에 사는 친구 카오리도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 맛있는 점심을 준비해줬다.
교토의 근대 도예가 가와이 간지로의 기념관에 들렀던 날, 우리는 그 동네의 조용한 카페에 모여 앉았다. 선생님은 라쿠고가(일본의 전통 1인 만담)로 데뷔한 재능을 살려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려주셨다. 어린왕자의 친구가 된 여우는 어린왕자와 헤어지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 “너의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장미를 위해 낭비한 시간이란다.” 생텍쥐페리의 프랑스어 원서를 영어로 처음 번역한 이는 생텍쥐페리와 가까운 친구였다. 그 영문판에서는 “네가 낭비한 시간”이라고 번역되어 있었다(선생님은 이 번역본이 가장 프랑스어 원본에 가까울 거라고 했다). 어린왕자의 일본어 번역본 12개를 확인하니 그 중 10개가 그 표현을 바꿨다. “네가 낭비한 시간”이 아니라 “네가 쏟은 시간”으로. 낭비라는 단어는 너무나 부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어서 번역자들이 단어를 바꿨을 거라는 게 선생님의 추측이었다.
낭비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시간이나 재물 따위를 헛되이 헤프게 씀”이라고 되어 있다. 좋은 의미라고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헤프지 않게, 헛되지 않도록 시간과 재물을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그로 인해 매사에 경제성과 효율성, 생산성을 따진다. 여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조지아를 ‘가성비 스위스’라고 표현하는 글을 읽고 혼자 서글퍼한 적이 있다. 조지아는 조지아만의 아름다움을 지닌 나라인데 왜 굳이 스위스와 비교를 해야 하는 걸까 싶어서였다. 여행지의 식당을 고르거나 명소를 찾는 일에서도 순위를 따지고, 리뷰의 평점을 체크한다. 경쟁이 심한 사회일수록 실패라는 경험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그러니 어떤 일에서도 실패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매사에 가성비만을 중심에 놓고 살아갈수록 삶은 팍팍해지지 않을까.
일상이 우리에게 실패를 허용하지 않으니 여행에서라도 우리는 실패할 기회가 필요하다. 인간은 실패를 통해서도 성장하는 존재니까. 무용한 것들에 헌신해보는 경험도, 쓸모라고는 없을 일에 시간을 낭비해보는 일도 여행이라면 좀 부담이 덜하지 않을까. 비생산적이고,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며 살고 싶다. 시를 읽고, 그림을 보러 가고(예술이야말로 가장 헛된 낭비니까), 꽃을 사서 꽃아 보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음식도 만들어보고, 친구와 마주 앉아 온갖 시시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교토와 나라의 친구들은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낭비했다. 마유미도, 신이치 선생님도, 카오리도 ‘돈이 되지 않는 헛된 일’에 헌신했다. 12월이 되어 다시 일본을 찾아갔을 때도 한결같았다. 도쿄의 친구 히로미 언니도, 한 달 만에 다시 만난 신이치 선생님도 나를 위해 돈과 시간과 마음을 쏟아부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며 살아가고 싶다. 무용한 것들, 쓸모없는 것들에 기꺼이 에너지를 쓰며 살고 싶다. 과거를 돌아보거나 미래를 계획하지 않으며, 지금 여기에 온전히 몰입하면서 그렇게 살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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