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규제를 마주하는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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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진 경기남부보훈지청 주무관

1960년대 이전의 우리나라는 낮은 의료기술 수준으로 인해 국민의 평균 수명이 60세에도 못 미쳤기 때문에 61세까지 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 따라서 환갑을 맞이한 것을 축하하며 크게 잔치를 벌이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현재는 ‘인생은 60부터’, ‘백세시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평균수명이 길어졌다.

15세부터 64세까지를 생산연령인구라 하고 만 65세 이상부터 고령인구라 하지만 요즈음 주위를 둘러보면 65세 이상을 고령이라 부르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문이 든다. 이렇듯 시대가 변해 가며 당시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것에서 이제는 “왜”라는 물음을 남기며 변화를 촉구하는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규제도 마찬가지다. 제정될 시기에는 합리적이고 정당했던 규제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실의 목소리와 괴리가 생기고 있다. 급변하는 환경에 걸맞은 정부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존 규제의 틀에 얽매인다면 국가 발전을 저해하거나 ‘공무원은 탁상행정을 일삼는다’고 비난을 받는 등 불가피한 상황에 맞닥뜨릴 것이다.

국가보훈처의 2022년 규제혁신 사례 중 ‘상이 유공자 등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친환경 차량에 대한 충전비 지원’은 현실을 반영한 규제혁신의 대표적인 예다. 기존에는 액화석유가스(LPG) 차량에 대해서만 LPG 개별소비세 인상분을 지원했으나 올해부터는 친환경 차량인 전기 및 수소차가 추가됐고 구매보조금 및 충전비도 지원해 국가유공자를 위한 더욱 폭넓은 지원 혜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 더불어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탄소중립 정책에도 발맞춰 나아갈 수 있게 됐다. 휘발유, 경유 및 가스차만 나오던 시대와는 달리 수소차, 전기차가 점점 급증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지원이 없다면 국가유공자에게 부담은 더욱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경기남부보훈지청에서도 국가유공자에게 더욱 이롭고 발전적인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보훈 새로이’라는 공무원 연구모임을 주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시간을 통해 국가유공자와 직접 소통하며 행정업무를 소화하고 있는 사업 담당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행정을 집행하면서 느꼈던 문제점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며 불필요한 행정 절차, 중복적인 행정 서류 요구, 과도한 예산 집행 등의 부정적인 행정 요인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도출한다. 우리는 이러한 규제혁신에 동감(同感)을 가지고 직원과 민원인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행정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무원은 행정을 집행함에 있어 규칙과 규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시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다수의 국민에게 이롭지 못한 규제라면 곧이곧대로 실행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국민의 불편함은 덜어주고 살기 좋은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규칙과 규정을 해석해 현실을 투영한 정책으로 고쳐 집행하는 것이 이상적인 공직자의 모습일 것이다.

최근 유명 축구선수가 경기 후 언급한 생소한 한 단어가 대한민국 국민에게 큰 울림을 줬다. ‘중꺾마’, 바로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뜻이다. 기존의 규제를 바꾼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직자로서 국가와 국민을 생각하며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규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개선하려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러한 값진 노력은 머지않아 우리 사회를 환하게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다.

권은진 경기남부보훈지청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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