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초등학생이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대낮에 만취 상태였던 운전자는 뺑소니 의혹까지 받고 있다. 4년 전, 단속 기준을 높이고 음주운전자를 가중 처벌하는 일명 ‘윤창호법’이 도입됐지만 이러한 비극적인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음주운전뿐만이 아니다. 주폭 등 다른 주취 범죄도 여전하다. 범죄는 아니더라도 지난해 알코올 관련 사망자가 하루 평균 13.5명(통계청 ‘2021년 사망원인 통계’)에 이르는 등 술로 인해 우리가 입는 피해는 막심하다.
그런데 이 문제는 만만치 않다. 개인, 사회, 국가가 전방위적으로 노력하더라도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가능했다면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술에 대해 고민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술을 폐기할 수도 없고 말이다. 하지만 최소한 상황을 나아지게 할 순 있다. ‘술 권하는 사회’, ‘술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전환해야 한다. 알코올 중독 치유를 지원하고 주취 범죄에 엄격히 대응하는 등 제도적 대응도 필요하다. 개인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술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잡아야 하는데, 여기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만한 가르침이 있다.
논어의 ‘향당’편에 보면 ‘유주무량 불급란(唯酒無量 不及亂)’이란 구절이 나온다. 공자는 술에 대해 양을 정해 놓지 않았지만,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평소 내 주량은 어느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한데 주량이 소주 한 병이면 한 병을 마시는 동안에는 긴장을 풀고 있다. 그 정도로는 취해 흐트러질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통 때는 괜찮았던 음주량인데 어떤 날은 일찍 취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주량을 넘겼는데 멀쩡한 날도 있다. 그날의 몸 상태와 기분에 따라 취하는 시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또 소주 한 병이 주량이라도 매일같이 한 병을 마셔대면 몸에 탈이 나고 심지어 중독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주량을 내세우며 술 마시는 것을 합리화하곤 한다. 따라서 공자의 말처럼 내가 마실 ‘술의 양’을 정해 놓아서는 안 된다. 얼마나 마실지의 기준은 ‘나의 평소 주량’이 아니라 ‘지금 나의 상태’가 돼야 한다.
공자가 술을 마실 때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은, 바로 현재의 몸 상태에 맞게 음주를 제어했다는 뜻이다. 많이 마시든 적게 마시든 ‘이러다가 취할 것 같은데’라는 기미가 보이는 순간, ‘내가 흐트러질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멈췄다는 것이다. 그 순간을 놓치면 내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술이 나를 마시는 상황이 된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겠지만 술을 마실 때는 주량을 믿지 말고 나의 정신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적절한 시점에 자제하는 것을 습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술에 끌려다니거나 술로 인해 실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즐거운 술자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연말 송년회에서도 ‘술의 양을 미리 정해 놓지 않았지만, 정신이 어지러워지는 지경에 이르지 않았다’는 공자의 태도를 기억해 주시길!
김준태 성균관대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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