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는 그의 저서 도덕경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가르쳤다. 자연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한 것이다. 우리 자신도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동물들은 새끼를 낳아 키울 때는 목숨을 걸고 돌본다. 그러다가 성장기를 마치면 단호하게 새끼와의 관계를 정리한다. 이는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개체로 스스로 살아가게 하기 위함이다. 노자는 사람도 이처럼 자연을 닮은 삶을 살아가라고 했다.
서구사회에서는 자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냉정하게 독립시킨다. 그때부터 아이는 대학 진학도 결혼도 스스로 해야 한다. 이 모습은 마치 자연의 세계하고 닮았다. 서구에서는 남은 재산도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문화가 성행하고 있다. 좀처럼 자식에게 물려 주지 않는다. 자식이 의타적(依他的)으로 살아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너무나 희생적이다.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부모가 모든 것을 도맡아 대신해 준다. 지나친 희생이 내 자식을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좀처럼 모른다. 그러다 보니 자녀들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자란 자식들은 독립해 스스로 살지 못한다.
‘집 밖은 위험해’라는 신조어는 실소를 자아낸다. 자립할 나이가 됐는데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용어인 ‘캥거루족’이라는 고유명사도 생겼다. 자식들은 취직해 힘겹게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없으니 결혼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부모 밑에서 안주하는 것을 즐길 뿐이다. 그런 자식을 탓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다. 다행히 자식이 취직해 결혼하면 혼수 준비도 부모가 대신 해준다. 손주가 생기면 부모는 평생 아이를 돌보며 산다. 부모가 자녀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다가 자식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주고 요양원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한다.
노자는 생이불유(生而不有)라 하여, 낳았다고 소유하려 하면 안 된다고 했다. 또 장이부재(長而不宰)라고 하여, 들(땅)은 꽃을 자라게 할 뿐 지배하거나 구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부모들은 자식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같이 아이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려 한다. 자식은 독립된 개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오로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켜봐야 한다. 부모는 자식의 소질을 발견해 주고, 자식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만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공무원’이 되거나 ‘교육자’가 돼, 또는 대기업에 입사해 평생 안정되게 살기를 원한다. 절대로 도전하는 삶을 가르치지 않는다. 물론 사회를 유지하려면 공무원도 필요하고, 교육자도 필요하고, 대기업의 직원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정해진 규칙대로 행동해야 한다. 평생을 피동적으로 살아야 한다. 부모들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자유가 없는 삶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직 안정을 위해, 자기 자식을 ‘나라의 심부름꾼’이나 ‘재벌의 하수인’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우리나라 부모는 자식의 적성과 소질은 좀처럼 고려하지 않는다. 오직 부모가 바라는 대로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많은 이상한 나라다. 모두가 안정된 삶을 원한다. 그렇다면 “소는 누가 키운단 말인가?”
복진세 칼럼니스트·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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