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풀꽃

풀꽃

                                     박병철

아무도 없는 들길을

홀로 걸으며

마른 풀숲에

겨자씨만한 눈을 뜨고

혼자서 피어있는

아주 조그마한 풀꽃을 보면

넙죽 엎드려 큰절을 하고 싶어요.

 

작디작은 풀꽃… 더 강인하여라

11월은 모든 초목이 시드는 계절이다. 여름내 기세등등하던 활기찬 모습은 간 데없고 쓸쓸하다 못해 초라해진다. 들녘이라고 다를 리 없다. 아니, 오히려 황량하기 짝이 없는 게 들판이다. 황금빛이던 너른 들이 바짝 말라가는 그 퇴화를 어찌 평상심으로 바라볼 것인가. 

허나 꼭 그렇지만도 않다. ‘겨자씨만한’ 풀꽃이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 작은 생명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평소엔 잘 눈에 띄지도 않았던 풀꽃. 그러나 남들이 다 시든 마당에서야 자신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주는 저 작은 풀꽃. 그래서 넙죽 큰절을 하고 싶다는 것. 그 작디작은 풀꽃 한 송이로 하여 들녘은 오히려 따뜻한 안마당일 수도 있다. 

강정규의 동화에 그런 이야기가 있다. 목발의 소녀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건물 꼭대기에 올랐을 때 달빛 아래 딱딱한 시멘트 바닥 사이에서 고개를 쳐든 민들레를 보고 마음을 바꾸는 장면이다. 

세상에는 작은 존재들이 엄청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시인이 겨자씨만한 풀꽃을 보고 큰절을 하고 싶다고 한 것 역시 생명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시인은 얼마 전부터 노래와 가요 연주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세월 속에서도 나이를 잊은 청바지 청년이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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