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무명의병을 찾아서] 숨겨진 경기 의병의 유적, 어떻게 기억하고 기릴 것인가 <2>

‘무명의병의 魂’ 새겨진 보물, 국난극복 유훈으로 계승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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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양평 을미의병묘역에 조성된 기념비석. 용인 평창리의 임옥여 의병장 동상. 1895년 1월 이천 광현전투를 기념한 비석. 13도 창의군대장 이인영의 여주 생가지 기념비

■ 양평을미의병묘역에서 만나는 ‘미스터 션샤인’

지난 10월26일 양평군 양동면 석곡리 산 74번지 깊은 야산인 양평을미의병묘역에서 제26회 양평의병추모제가 거행됐다. 양평의병기념사업회에서 주관해 열리는 이 추모제에는 의병 유가족을 비롯해 군수와 국회의원, 지자체장들과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해 매년 추모행사와 제향을 열어 독립유공자들의 정신과 유훈을 기리고 있다. 묘역의 중앙에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들인 영국 기자 매켄지가 찍은 양평 의병들 모습과 “일본의 노예가 되느니 자유민으로 죽겠다”는 의병들의 유훈이 새겨져 있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2007년부터 조성된 전국 유일의 이 의병묘역에는 의병 묘를 중심으로 제단과 어록비, 공적비 등이 잘 배치돼 있어 명소로 활용되고 있다. 양평군에는 이 밖에도 1907년 의병전투를 벌인 용문산의 용문사와 사나사, 상원사 등지에 의병 사적지가 있다. 군민들은 사적지 입구나 공원 등지에 기념비와 안내판 등을 조성해 의병의 고장임을 널리 알리고 있다.

인근 연천군에는 법화동과 심원사를 비롯해 마전리, 소목개, 외울마을 등지에 의병전투 사적지가 남아 있다. 또 신서면 대광리의 인근 야산에는 1907년 9월경 일본군 수비대와의 전투에서 순국한 의병 5인의 묘가 있다. 인근 법화동과 심원사에 주둔하고 있던 의병부대의 의병 250여명을 습격한 일본군에 의해 희생된 5인의 의병 시신을 지역주민들이 수습해 봉분을 만들어 준 것으로 보이는데, 문헌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아직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항일의병 5위 위령비’라는 작은 표식과 연천군수와 문화원장 명의의 안내판이 묘역을 지키고 있지만 이런 곳에 경기 무명의병의 기념비석을 조성해 교육 장소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보석처럼 숨겨진 경기 의병들의 흔적

경기 남부지역에도 보석처럼 숨겨진 경기 의병의 흔적이 적지 않다.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의병 활동지로는 이천시와 광주시, 용인시를 들 수 있다. 이천시에는 1895년 10월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봉기한 경기 이천 수창의소 의병들이 이듬해 1월17일 출동한 일본 정규군과 전투를 벌여 승전한 광현전투지를 꼽을 수 있다. 유인술과 매복전투로 승기를 잡은 이천 의병부대는 패주하는 일본군을 추격해 광주군 도척면 노곡리 노루목장터에서 적병 200여명을 전멸시키는 쾌거를 이뤘으며, 이후 광주군 남한산성으로 진입해 서울진공작전을 펼쳤다. 광주시에는 후기 의병에 해당하는 1907~1908년에 광주 경안역과 태전리, 능곡 일대에서 의병전투지를 찾아볼 수 있다.

광주시와 성남시의 경계지역인 돌마면 독점마을에도 1908년 1월 일본군과 의병들이 벌인 전투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전투에 참여하고 ‘청계산 호랑이’로 알려진 윤치장 의병장의 묘가 성남시 금토동의 파평 윤씨 묘역에 남아 있다. 여주에는 1907년 13도 창의군 대장인 이인영 의병장의 생가를 비롯해 원용팔 의병장의 생가가 남아 있다.

용인지역은 대표적인 친일 반민족 행위자인 송병준의 별장터를 비롯해 의병장 임옥여의 집터와 동상, 굴암사 의병 활동지와 김량장터, 옛 백암장터 등 다양한 사적지가 남아 있다. 이 중 양지면 추계리의 송병준 별장터는 가장 매국적인 단체인 일진회의 소굴로서 일본 침략에 저항하는 의병을 비롯해 항일지사와 일반 양민들까지 잡아다 고문하고 학살한 수탈지로서 의병들이 쳐들어가 전투를 벌인 곳이다.

안성 일대에는 남부지역에서 주로 활약한 의병장 정철화가 근거지로 삼은 칠장사가 잘 보존돼 있다. 30여명의 정예부대로 편성된 이 의병부대는 안성과 충주, 청주 등지에서 일본군을 공격해 큰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는데 칠장사가 그 활동 근거지 역할을 했던 것이다.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관아터도 경기 의병들이 습격했던 역사유적지다. 수원과 안성, 평택 등지에서 활동하던 의병들이 평택관아를 습격해 외삼문과 내삼문을 파괴하고 친일 관리들을 구타한 후 달아났다. 수원 용주사도 1907년 당시 신문기사에서 의병 전투가 있었다는 내용이 확인됨에 따라 사적지로 드러났다. 이처럼 경기 의병들의 피와 눈물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방치한 채 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으면서 청소년들과 지역민들의 애향심을 기대할 수 있을까.

■ 어디에도 없는 무명 경기 의병 상징물,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

해외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각 나라 수도의 중심가, 또는 상징 장소의 한가운데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무명용사의 묘역이나 공원, 상징 동상이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 아래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에는 365일 꺼지지 않는 ‘용사의 불’이 켜져 있어 외국 국빈이 반드시 방문해 헌화하는 명소다. “오직 신에게만 알려진 미국의 병사가 여기 명예롭게 잠들고 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 추모비는 성역으로 관리해 오다가 건립 100년인 올해 개방돼 수많은 추모객을 맞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희생된 무명용사를 기리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무명용사비는 365일 내내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꽃’으로 조성돼 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성당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는 유명 인사들의 결혼식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그런데 50년 독립전쟁을 치르며 수많은 애국지사, 순국열사를 배출한 대한민국에서 무명용사를 기리는 곳은 어디에 있는가. 국립서울현충원 안에 무명용사비가 유일할 뿐, 경기도에는 단 한 곳도 없다. 더욱이 1911년까지 의병전쟁으로 순국한 1만8천여 의병 중 경기도 출신이 1천200여명에 이르는데 대부분 이름을 알 수 없는 타의에 의한 무명의병들이다. 우리 후손들의 생존을 위해 흘린 그들의 피와 눈물과 소망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 1천만 경기시민의 몫이 아닐까.

김명섭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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