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위로 감꽃비가 우수수 쏟아진다
제 살갗을 여러 겹 드러내고 있는 감나무
그런 감나무를 꼭 닮은 할머니가
감꽃비를 털어내며
생각을 가지 끝에 주렁주렁 매달아 놓는다
우리 아그들 주려믄 달큰히야 헐틴디
까치밥 몇 알을 남겨두고 할머니는
소쿠리 한가득 감을 담아 머리에 이고
구부정한 걸음으로 툇마루에 겨우 앉는다
할머니만큼이나 닳아버린 무딘 칼로
감 껍질을 한 시름 벗겨내면
할머니의 손톱엔 온통 노을이 진다.
꼭지 끝에 명주실을 달아
햇볕이 가장 잘 드는 처마 밑에
대롱대롱 감을 널어놓는 할머니는
기억이 들쑥날쑥 할 때마다
곶감에 자신의 지문을 여러 겹 덧입힌다
바람이 성긴 가지 끝을 맴돈다
제때 따지 못한 감들이
장독대 위로 툭, 툭 제 몸을 떨군다
강세희
1985년 충북 옥천군 출생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졸업
2022 제11회 정조대왕숭모
전국백일장 일반부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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