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거리엔 골목이 넘친다. 경리단길, 퀴논길, 엔틱가구의 거리, 우사단길, 회나무길, 해방촌길까지 이태원 골목 곳곳에는 청춘이 가득하다. 특히 세계 각국의 외국인이 모여드는 이태원만의 특징은, 이태원을 대한민국 안에서 가장 이국적인 장소로 만들어줬다. 그래서인가, 2000년대 초반 외국 유학생과 외국인 강사 등을 통해 전파된 핼러윈 문화가 가장 찬란하게 정착한 곳도 바로 이태원이었다.
핼러윈은 10월의 마지막 날 유령이 찾아온다고 믿는 고대 유럽의 켈트족 풍습에서 비롯된 서양 명절이다. 나쁜 유령들이 해를 끼칠까 두려워한 사람들이 자신을 같은 유령으로 착각하게끔 무시무시하고 기괴한 모습으로 꾸미면서, 이는 곧 핼러윈 축제의 상징이 됐다. 미국에서는 아이들이 괴물 분장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사탕을 얻는 모습이 핼러윈의 가장 흔한 풍경이지만, 우리의 경우 20대 젊은층이 독특한 코스프레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뽐내는 대표적인 청년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래서인지 매년 10월 말이 되면, 이태원 골목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한 청년들로 가득 찬다. 핼러윈 축제가 청년층의 자유와 저항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가 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대형참사가 남긴 상처는, 골목 곳곳에 남아 쉽게 아물지 않을 듯하다. 좁은 골목에 가득한 그들은 아무 죄가 없다. 그저 축제를 즐기기 위해 그곳에 왔고, 이태원역 1번 출구 앞의 그 골목을 지나가려 했을 뿐이다. 오히려 청년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게끔 ‘안전’을 제공하지 못한 기성세대들의 책임인 것이다. 주최 측이 없어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거나, 갑자기 사람이 몰려드는 돌발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다했다는 식의 변명은 구차하다. 오히려 사고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애쓴 경찰과 의료진, 그리고 직접 심폐소생에 나선 시민들의 진심 어린 용기에서 희망을 본다. 하지만 인간은 선과 악의 이중성이 있고, 이는 위기 상황에서 나온다했던가?. 시신 바로 옆에서 음주가무를 즐기고, 사진을 찍어 이를 자랑하듯 SNS에 올린 빌런들이 있었다. 인간의 존엄성이 송두리째 부정되는 순간이다.
영웅과 빌런이 혼재했던 아비규환의 골목에서, 우린 154명의 소중한 청년들을 잃었다. 그래서인지 핼러윈이 주는 어감에 서글픔을 느끼는 건 비단 필자만이 아닐 것이다. 이태원의 골목은 언제나 똑같이 그 자리에 있다. 하지만 골목을 스치는 바람마저 울음소리인 듯, 골목 속 풍경은 세상에서 가장 슬프다.
이승기 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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