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역사(歷辭)와 副市長(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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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웅 수원특례시 화서1동장

조선시대 수령(守令) 임명에는 역사(歷辭)가 있었다. 역사란 새로 임명된 수령이 의정부와 이조 등 관아를 돌며 부임(赴任) 인사를 드리는 행위다. 예의상 하는 일이 아니다. 속대전에 있는 법적인 의무사항이다. 역사는 조선시대 인사행정의 마지막 관문의 절차인 셈이다.

역사의 의미는 첫째, 수령은 관장하지 않는 일이 없을 만큼 중요 직책이므로 선배들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둘째, 추천과 서경(조선시대 인사청문회)의 절차를 거쳤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흠을 알아보기 위함이다. 인사 검증을 사람에게 의존했던 조선시대 인사 시스템이다.

역사 절차에서 흠결이 알려지면 부임 인사를 받지 않는다. 이로 인해 부임이 거부 또는 번복되는 일이 실록에도 남아 있다. 1735년(영조11년) 12월5일 좌의정 김재로가 오석종의 해남 현감 제수를 역사에서 부임을 거부했다. 하지만 이처럼 좋은 인사 검증제도에도 부정부패가 존재했다. 의정부와 문무관이 수령에 대한 추천권과 서경권, 이조와 병조가 인사 담당자로 권한이 컸다. 그만큼 인사 청탁과 부정한 뇌물의 여지도 많았다.

이러한 인사 부정은 역사로만 치부해 덮을 수 없음도 현실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다양한 인사청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2018년 승진 인사청탁을 대가로 군청 공무원 2명으로부터 각각 2천만원의 뇌물을 챙긴 전 함양군수 징역형 선고. 2018년 공무원 승진 인사를 빌미로 수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전남 무안군수 징역형 실형 받아 군수직 상실. 2012년 인사청탁 관련 뇌물을 받은 전 강릉시 국장 징역 1년6개월에 벌금 4000만원 선고.

한편 역사와 결은 다르지만 인사 발령 후 임용자들에게 인사를 받지 않는 공직자가 있다. 바로 수원시 제1부시장이다. 그의 집무실은 인사 전후로 결재 외는 출입금지. 면담은 꿈도 꿀 수 없다. 사전 검토를 통해 중요 사안만 대면결재가 가능하다. 부시장의 ‘부임인사 금지’ 때문이다.

“이번 인사에 내가 힘 좀 썼어. 승진은 내 덕인 줄 알아”라며 어깨에 뽕 좀 주고 싶었을 터인데,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귀호강을 받고 싶었을 법도 하며, “부임지 가서 잘해”라고 당부의 손을 나누고 싶진 않았을까. 아니 이런 것 자체를 사치로 여길지도 모르겠다. 인사에 자신의 견해가 반영되지 않아서라면 매번 그러지도 않았을 터.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에게 인사 부정은 어불성설. 인사청탁 노크라면 문전박대가 불 보듯 뻔하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금언(金言)이다. 사람의 일이 곧 모든 일이라는 뜻, 알맞은 인재를 잘 써야 모든 일이 잘 해결됨을 이르는 말이다. 일을 수행할 사람을 잘 확보하고 업무를 맡겨 성과를 내고자 함은 모든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고민이다.

문제성 있는 인사 발령이 나면 으레 도는 말들이 있다. ‘학연 인사’, ‘지연 인사’, ‘혈연 인사’, ‘보은 인사’, ‘Ⅹ판 인사’다. 이런 말들이 뒷담화로 도는 조직에서는 일의 성과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역사가 조선시대 관료의 인사 부정 해소는 물론 청렴성 유지와 기강 바로잡기에 기여했음은 사실이다. 인사 관련 공직자들은 역사를 거울 삼아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부시장의 ‘부임인사 금지’와 미소에 담긴 수원의 미래가 기대된다.

장보웅 수원특례시 화서1동장·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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