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시대는 끝났는가, 끝나야 하는가.
‘불평등과 기후위기’라는 지구적 실패를 낳은 자본주의 체제가 사회와 환경을 고려한 전환적인 정책과 투자, 친환경적인 기술개발과 좀 더 민주적인 지배구조로 개선된다면, 다시 안정적으로 지속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세계가 지속가능하다는 것은, 부가가치 생산과 자본 축적이라는 몇 가지 초현실적인 주요 지표들로 대변되는 경제성장이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성장이 지속된다는 것은 점점 더 많은 자원과 노동, 기술이 투여된 상품들을 더 많이 소비하는 지금까지의 ‘대량체제’가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부터 이러한 체제에 본격 진입한 것으로 본다.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에너지는 중앙집중적인 화석연료 시스템과 ‘성장’이라는 이념이다. 이것이 지구적 실패를 낳았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동의하겠는가.
그렇다면 이 화석연료를 완벽에 가깝게 대체하고 온실가스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다면, 경제성장을 위해 지구자원을 지속적으로 대량 채취하고 소비해도 괜찮은 것인가. 만약에, 전제가 잘못됐다면. 이를테면, 지금까지 화석연료가 해 왔던 기능을 재생가능에너지가 대체한다면 괜찮은 것인가. 대체할 만큼 태양광, 풍력발전에 얼마나 많은 철강과 구리, 희귀금속 등 지구자원이 필요할까. 대체한다는 것은, 지금까지처럼 ‘대량소비체제’가 재생 가능한 생태자원을 포함해 지구자원을 비가역적 속도와 물량으로 채취하고 ‘소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태양광, 풍력, 그린수소 등의 친환경 에너지 기술이 그 정도 물량으로 기존의 화석연료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는가. 더구나 지구 생태자원과 물질자원도 현재 채취 물량과 속도로는 유량과 저량은 물론 채취로 인한 생태계 파괴까지 한계가 임박했다는데, 에너지만 대체한다고 괜찮은 것인가. 계속 성장하는 세계에서 나는 잘 적응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 체제에 살아가야 하는가.
지금까지 이 체제가 배출한 온실가스만으로도 기후재앙은 시작됐다. 여전히 계절은 바뀌고 있어서인지, 급진적 생각과 주장이 망설여진다. 미래에도 여전히 황금 들판과 먹음직스러운 과실들이 일상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면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설마 내가 그것을 직접 눈으로 보겠는가? 지금 누리는 대부분의 일상과 그것을 지탱하는 시스템이 사라지고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그런 상실을 상상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나 또한 1970년대에 태어났고, 80년대 풍요에서 멀리 걷고 하늘과 맞닿은 대지를 바라볼 만큼 뼈를 키우고 살을 찌웠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본다. 무엇이 나를 키운 것인지. 무엇이 나머지 삶을 채웠으면 하는지. 성장 지표, 복잡하고 허구적인 목표에 얽매이는 것보다, 근거 없는 희망보다 절망과 대면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 현실이 우리를 구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재앙과 붕괴의 터전 위에 어떤 문명이 기다릴지 아무도 모른다 해도. 다시 단순함으로 가까운 곳부터 연대하고 조직하자.
윤은상 수원시민햇빛발전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댓글(0)
댓글운영규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