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위기는 결국 국가의 위기로 직결된다. 대한민국은 출생율 0.92명으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적게 낳는 나라이다. 수도권과 대도시에서 멀어질수록 인구는 빠르게 줄어든다. 수도권 집값이 올라가는 동안 지방은 미분양아파트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에 똘똘한 집 한 채를 마련하지 못하는 지방사람들은 매일 뉴스에서 나오는 수도권 집값을 들으며 다른 나라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심한 박탈감을 느낀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인서울’이 간절한 목표일 때에, 지방대에서는 대규모 정원미달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학령인구감소와 수도권대학 선호현상으로 ‘벚꽃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소멸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지방의 거점기관인 대학이 문을 닫는다면, 이는 지역경제위축과 일자리감소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수도권 쏠림현상을 부르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1000대 기업 중 수도권에 본사를 둔 기업은 74%에 달하며, 10억원이상 투자받은 스타트업 중 93.2%가 수도권에 위치하고 있다(2019년기준). 문화인프라, 편의시설, 교통인프라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달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이름은 서울공화국이다. 지방이 쇠퇴하게 되면, 인구가 적은만큼 개인이 부담하는 사회적 유지비용이 상승하는 것 이외에도 정부예산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다는 점에서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일자리가 집중되어 있는 서울로 청년들은 모여들지만, 지역별 출생률을 살펴보면 서울의 출생률이 가장 낮다는 기이한 현상이 존재한다. 서울로 몰려든 청년들이 극심한 경쟁 속에서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상황이니, 어찌보면 기이한 것이 아닌 당연한 현상일 수도 있겠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풍요가 무엇인지를 찾고, 여유로운 슬로라이프,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하며 지역으로 회귀하는 흐름들 또한 생겨나고 있다.
특히 지역의 자원과 지역의 특성과 개성을 활용하여,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사업영역이나 일거리를 만들어내가며, 지역사람들과 교류하고 지역의 가능성을 개척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SNS의 역할도 크다. ‘따로 또 같이’ 형태의 느슨한 연대로 전국 어디서나 연결될 수 있고, 지역 방방곡곡의 소식들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회사 같은 조직에 대한 소속감은 옅어진 반면, 취미공동체 같은 업종공동체의 연대감이 커지면서,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로컬>의 존재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물론, 코로나의 영향도 크다. 거리두기 등으로 집 주변에 머물면서 지역이나 동네의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역의 가치, 스토리텔링, 정체성, 컨텐츠에 집중하게 되면서 로컬은 ‘익숙한 특별함’으로 다가오게 된다. 특히 MZ세대는, 로컬에서의 특별한 경험과 숨겨진 이야기들을 찾는 것을 SNS로 공유하는 것을 취미로 삼기도 한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 및 로컬트렌드를 선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로컬기반 소상공인들과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들은 지역의 자원과 과제를 발굴하고 연결하여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내는 창업가로서 지역을 매력적인 일터이자 삶터로 만들고 있다. 지역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들에게 단순한 노동이나 일이 아닌 경력을 쌓는 과정의 하나로 선택받고, 개성없는 조직의 일원이 아니라 얼굴이 보이는 존재로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일을 만들어가고 있다. 지역과의 연대와 경험을 구축해가는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여긴다. 물질보다는 경험이나 연결 등, 보이지 않는 것을 중시하는 쪽으로 라이프스타일과 가치관이 크게 변하고 있다.
로컬크리에이터들의 새로운 관점을 통해, 지역의 오래된 건물에 새로운 기술이, 전통적 삶에 젊은 감성이 융합되어, 장소의 고유성은 더욱 두드러지게 된다. 지역에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세가지 필수요소로 ‘청년, 괴짜, 타지인’이 언급된다. 연고도 없이 지역으로 무작정 내려간 괴짜청년들을 텃새가 아닌 포용으로 환대하고, 지원대상이 아닌 매력적인 지역 경영 파트너로 초대하자. 저성장 인구 감소시대에 중요한 것은 목적 지향형 계획이 아니라, 사람들의 내면적 변화들을 민감하게 파악하고 그것을 사회의 변화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희망의 싹은 지역에서 찾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방을 소멸하는 위기의 섬으로 만들지, 충만한 기회의 땅으로 만들지는 우리들의 선택과 지역 경영 역량에 달려있다.
김보람 한국지방자치학회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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