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김명숙
내 머리보다 큰
수박을 샀다
가운데를 쩍 갈랐다
잘 익어 달디 단 수박
나누어 먹으니 더 달다
뱉어낸 씨앗으론 글씨를 썼다
수박 수박 수박......
이라고 쓴 까만 글씨가
박수박수박수......로 읽혔다
잘 익은 게
박수 받을 만하다
박수 받을 만한 잘 익은 삶
여름 과일 가운데 가장 먹음직스러운 건 아무래도 수박이 아닐까 싶다. 우선 덩치부터가 그렇고, 속살은 또 어떤가? 벌겋게 익은 게 보기만 해도 군침을 돋운다. 여기에 여러 사람이 나눠 먹는 즐거움이 있다. 제아무리 여름 햇살이 뜨거워도 수박을 앞에 놓고 먹을 때만은 덥지 않았던 추억을 필자는 지금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뱉어낸 씨앗으론 글씨를 썼다/수박 수박 수박....../이라고 쓴 까만 글씨가/박수박수박수......로 읽혔다’. 시인은 잘 익은 수박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니 칭송했다. 이 수박 예찬론은 여기서만 멈추지 않고 인간사(人間事)에까지 암시를 던진다. 우리네 삶에서 ‘익는다’는 건 뭘 의미할까? 그렇다. 사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삶이란 생각이 든다. 주어진 자기 일에 열심히 매달리는 것, 땀을 쏟는 것, 스스로 만족하는 것, 빙긋이 웃는 것. 이 모두 박수 받을 만하지 않은가? 며칠 전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모여 점심을 함께했다. 다들 주름진 얼굴에 허연 머리들이었지만 입가엔 웃음이 맴 돌았다. 이 동시를 읽다가 그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 건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들도 다 ‘잘 익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알고 보면 수박이나 사람이나 다 마찬가지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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