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관통한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자연과의 공존, 생태계 파괴 같은 문제들이 여전히 눈에 밟힌다. 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다. 수원시립미술관의 <휘릭, 뒹굴~ 탁!>에서 정재희, 이병찬, 최성임, 이수진, 유화수 등 5명의 작가들은 저마다 환경에 대한 관점을 개성 넘치게 풀어 놓았다. 전시는 수원시립아트스페이스광교에서 지난 8일부터 오는 9월12일까지 열린다. 이번 전시에선 설치, 영상 등 총 38여 점의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휘릭’, ‘뒹굴~’, ‘탁!’은 인류가 팬데믹 시기를 지나면서 겪은 감정들을 표현한 단어들이다. 환경 파괴로 인한 재난과 사회적 위기가 인류의 일상에 ‘휘릭’ 침투해 버렸다. 이를 극복하고 함께 살아가려면 ‘뒹굴~’ 모여 연대하며 새로운 대안을 ‘탁!’ 찾아내야 한다. 이번 전시는 그만큼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만든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정재희의 ‘이상한 계절’을 만날 수 있다. 자연은 늘 변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기준을 세워 환경을 조종한다. 온·습도를 조절하는 전자제품들 역시 적정 조건을 맞추는 용도인데, 이 같은 기구들이 한 곳에서 무의미하게 전력을 소모하고 있다. 정 작가는 인간에게 당연한 것이 자연에겐 이상하지 않겠냐고 질문을 던진다.
다음 전시장에선 이병찬의 독특한 구조물이 눈길을 끈다. 그는 폐비닐과 플라스틱, LED 조명과 모터 등으로 '크리처'를 만들었다. 호흡과 움직임을 통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속이 텅 비어 있어 자본사회의 허상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같이 전시되는 ‘파동의 언어’를 통해 이 작가는 보이지 않는 호흡과 거대한 질량으로 이뤄진 도시의 이미지를 공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이어 최성임의 작품들은 5개의 섹션으로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고랑’을 시작으로 ‘맨드라미’와 ‘간격’을 만나고 ‘황금이불’을 지나면 ‘Holes’가 기다린다. 작가는 이질적인 물성의 연결과 충돌에 몰두한다. 다양한 소재와 그에 따른 조명 배치로 인해 각 구조물이 서로 독립되지 않고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사물들이 지닌 변화와 지속의 상태를 짚어볼 수 있다.
이수진의 공간에선 매체를 넘나드는 체험의 장이 열린다. '별의 돌림노래', ‘죽은 새들의 별자리’는 관객의 참여로 완성되는 입체 오브제를 통해서 포용해야 하는 가치에 관해 말한다. 12분 남짓의 영상 ‘아울러 프로덕션’은 자연현상의 불협화음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다.
마지막으로 유화수는 긴 복도형 공간에 2010년부터 공사 현장에 버려진 산업폐기물과 각종 자재들을 채워 넣었다. ‘건설’적인 명분으로 자연의 영역을 파괴해 온 ‘건설’ 행위에 주목하는 작가는 터전을 잃거나 방치되는 것들의 이면을 들여다 봄으로써 인간의 노동 가치와 유용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한다.
이번 전시를 담당한 이연주 학예연구사는 “체험형 전시를 통해 일상과 맞닿은 환경 문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며 “작가와 미술관과 관람객의 상호작용을 활성화하는 데에 중점을 뒀다”고 전했다.
송상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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