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경제] 강아지와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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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주인을 잘 따르는 강아지가 있다고 하자. 주인이 강아지와 산책을 나서면, 호기심이 발동한 강아지는 주인보다 앞서 걷기도 하고, 때론 주인보다 한참 뒤에서 머뭇거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할 쯤이면, 강아지는 언제나 그렇듯이 주인 옆에 있을 것이다. 주인을 잘 따르는 강아지이기 때문이다. ‘주인과 산책하는 충성스러운 강아지’는 헝가리 출신의 전설적인 투자자였던 앙드레 코스톨라니가 언급했던 유명한 표현이다. 주가를 강아지로 기업 가치를 주인으로 비유하면, 비록 주가(강아지)는 기업 가치(주인) 보다 더 상승하거나 하락할 때도 있지만, 길게 보면 주가는 기업의 가치 주변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올해 KOSPI는 3,000p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2,300p 초반까지 하락했다.

주가가 기업 가치보다 뒤쳐져 있을까? 아니면 주가가 기업가치 하락을 합리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 기업들의 이익 전망 대비 주가는 2008년 금융위기 수준까지 낮아져 있다. 100년 만에 경험하는 전세계적인 전염병, 50년 만에 경험하는 전쟁과 물가 폭등과 같은 사건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물 경제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이 심각한지에 대해 곰곰이 따져보면 고민스럽다. 실물경기가 금융위기 때만큼 나쁘지는 않기 때문이다.

주가가 기업가치 보다 더 많이 떨어졌을까? 아니면 기업가치도 이미 주가만큼 훼손된 것일까?

주가가 기업가치 보다 더 많이 하락했다고 판단되면 주식을 보유하는 것이 유리하고, 기업가치가 앞으로도 계속 낮아진다고 전망되면 현재의 주가도 별로 매력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기업 가치를 제대로 분석하기에는 너무 많은 변수들이 얽혀 있어서, 전망의 신뢰성이 극도로 낮다는 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고, 미국과 한국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 정책이 경제에 어느 정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지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금융시장은 하루는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또 그 다음날은 경기침체를 걱정하는 등 악재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

필자는 공포심리를 유발하는 많은 요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 심화에 따른 중앙은행의 가파른 금리인상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중앙은행이 가파른 금리인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플레이션이 약해지는 신호가 필요하다. 이러한 신호는 미국 물가지수 상승률이 고점을 통과했는지 여부에 의해서 나타날 것이다.

상반기 내내 공포를 유발했던 위험이 뚜렷하게 해소되지 않았고, 기업 가치 개선에 대한 의구심이 지속되면 주가는 비록 큰 폭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반등 이상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불확실성이 걷히는 신호가 약하다. 강아지가 저 멀리 뒤에 있는 것 같은데, 큰소리로 불러도 한달음에 달려올 것 같지 않다.

여전히 기다림이 필요한 시절이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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