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우리는 잠시 이 자리를 거쳐가는 사람들이다”

트럼프에 남긴 오바마 손편지
‘죽이고 죽는’ 우리 권력 교체
전·후임 市長, 좀 넉넉해져라

편지는 덕담으로 시작했다. ‘축하한다. 수백만이 당신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 4가지 당부를 이어갔다. 첫째, 열심히 일하는 아이들에 성공의 사다리를 놔야 한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사려 깊고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셋째, 민주적 제도와 전통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 넷째, 친구들이나 가족과 시간을 많이 보내도록 해라. 백악관 집무실 위에 남겨진 손 편지다. 편지를 받은 트럼프가 취임식에서 밝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내게 남긴 아름다운 편지다.’

직접 경쟁하지는 않았다. 오바마는 재선으로 임기를 다했다. 민주당 후보는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그런데도 둘은 싸웠다. 오바마 출생지를 트럼프가 건드렸다. 만찬장에서 서로 얼굴까지 붉혔다. 트럼프가 승리하자 오바마가 실망을 표했다. ‘쓰리고 아프다’. 악연은 후에도 이어졌다. ‘대통령들 모임’에서 둘은 악수도 안 했다. 그런 둘 사이에 지킨 손편지 전통이다. 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는 단지 이 자리를 잠시 거쳐가는 사람들이다.”

말대로 임기-5년-는 잠시였다. 2021년에는 트럼프가 졌다. 트럼프의 뒤끝이 대단했다. 대선 불복을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지지자들이 의회로 난입했다. 바이든 취임식에도 불참했다. 152년 만에 있는 일이었다. 대신 핵가방을 들고 플로리다로 가 버렸다. 바이든도 트럼프를 맹공격했다. 볼썽사나운 전·현직의 싸움이었다. 하지만 그 난장판에서도 전통은 지켜졌다. 트럼프도 손편지를 남겼다. CNN이 ‘5년 전 오바마 편지의 감동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손 편지 전통’이 부럽다. 꼭 천조국(千兆國)이라서가 아니다. 세상 극빈국(極貧國)이래도 부러웠을 것이다. 우리엔 상상 못할 일이다. 우리 후임 대통령은 전임자 잡아 넣는 게 일이다. 14대가 12·13대를 구속했다. 17대는 16대를 자살케 했다. 19대가 17·18대를 구속했다. 이 흐름은 지금도 꿈쩍 거린다. 전직 대통령 집 앞이 농성장이다. 욕설과 조롱이 넘쳐 난다. 말리면 ‘5년 전엔 당신이 이랬다’며 막무가내다. 손 편지는커녕 죽고 죽임의 연속이다.

지방 권력이 이걸 배웠다. 후임의 업무 시작이 전임자 뒤집기다. 괜찮았던 사업이래도 없앤다. 없앨 수 없으면 반토막이라도 낸다. 공직 사회를 내편 니편으로 쪼갠다. 능력 본위라지만 사실은 편 가르기다. 이 칼춤의 시작이 인수위다. 바로 지금이 그 인수위의 시간이다. 인사 과장 교체 여부로 술렁인다(고양시). 의장의 인수위 참여 문제로 시끄럽다(파주시). 옆 동네 출신 도시공사 사장 설로 어수선하다(부천시). 4년, 8년, 그 훨씬 전의 재현이다.

아름다운 이취임식은 없었을까. 희미해진 그림이 있다. 2010년 7월 1일 촬영된 사진이다. 신임 수원시장이 90도 절을 했다. 상대는 떠나는 전임 시장이었다. 신임 시장이 공식 취임사에서 밝혔다. ‘수원발전의 도시 기반을 마련하고...(전임)시장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말씀드립니다.’ 사실 둘은 그 4년 전 경쟁자였다. 그 선거에서는 후임 시장이 졌다. 패배의 앙금이 클법도 했다. 그런데도 선언했다. ‘전임자를 존경하는 전통을 만들겠습니다.

그 뒤 그런 모습이 있었나.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대부분 이임식과 취임식을 따로 한다. 전임자는 전날 간다. 후임자는 다음 날 온다. 인사 나눌 짬도 없다. 그게 전통이란다. 그래야 편하단다. 이번에 26개 시군이 바뀌었다. 갈 시장, 올 시장이 62명이나 된다. 한 두 장의 손편지 얘기라도 들리면 좋겠다. 한 두 장의 사진이라도 다정했으면 좋겠다. 내키지 않아 머뭇거릴 필요 뭐 있나. 기꺼이 주면 된다. 복수한다며 이를 갈 일 뭐 있나. 감사히 받으면 된다.

오바마의 연설은 늘 명언이었다. 말 한 마디가 세계를 관통했다. 지금 보니 우리에도 더 없는 명언이다. ‘여러분은 단지 그 자리를 잠시 거쳐가는 사람들입니다. 기꺼이 넘겨주고, 감사히 받으십시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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