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익숙함의 위험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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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상훈 안전보건공단 경기지역본부 경영총괄부장

대부분의 운전자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차이가 없다면 상당수 동일한 경로를 사용한다. 그 이유는 익숙함 때문이다. 익숙함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여러 번 해 서투르지 않은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익숙한 길에서 두려워하거나 긴장하지 않고 편안함을 느낀다. 사고나 위험보다는 익숙한 길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운전자가 인식하는 위험도가 낮으면 과속이나 난폭운전을 하는 경향이 있다. 교통심리학자 리 숀제는 주관적인 안전성이 객관적인 안전보다 높을 때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위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이 분석은 익숙함이 사람의 상황이나 환경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위험과 오판을 초래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얼마 전 소규모 건설현장에 안전점검을 위해 방문했다.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안전난간은 물론 작업발판도 군데군데 비어 있고, 고정상태도 불량했다. 작업자들은 안전모나 안전대도 없이 넓게 뚫린 개구부를 뛰어서 이동하기도 하고, 구조물에 위태롭게 매달려 작업 중이었다. 심지어 콘크리트 하중을 지지하는 동바리(지지대)도 이단으로 설치돼 있었다. 이는 콘크리트 타설과 양생 시 붕괴위험이 있어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방식이다.

현장소장은 이러한 지적에 뜻밖의 반응을 보였다. “20여년간 이렇게(안전조치 없이) 작업해 왔어도 사고 한번 나지 않았다. 안전시설을 완벽하게 갖추면 작업이 불편하고 더디다. 사고위험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바로 익숙함의 위험한 비밀이다.

고용노동부는 2019~2021년 3년간 공사금액 1억원 이상 50억 미만인 중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가 566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들 중 60.8%는 추락위험 장소 안전난간 미설치, 개구부 덮개 고정불량, 추락방호망 미설치 등 12대 기인물에 대한 안전조치 미흡으로 목숨을 잃었다. 실제 사망사고 사례 분석 결과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준수했다면 대부분의 사망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안타까움을 더했다.

현장소장의 항변처럼 안전은 작업을 불편하게 하고, 안전시설 없이 20여년간 작업했어도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최근 3년간 중소규모 건설현장에서 발생한 600여명의 사고 사망자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익숙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이 그 이유 중의 하나이다. 작업자는 안전모·안전대를 착용하고 관리자는 안전시설을 제대로 설치하는 등의 안전한 행동들은 약간의 작업지연과 불편함에 비해 바로 받는 보상이 없다.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이로움은 당장 눈에 보이는 즐거운 보상이 아닌 것이다. 반대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고 약간의 법규를 위반하는 것이 공정을 빠르게 할 수 있다면 당장의 보상이다.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배를 피우듯, 당장의 보상을 위해 작은 불안전 행동을 지속한다면 큰 위험으로 발전할 수 있다. 지금은 사고가 없고 ‘내가 수십 년 간 이렇게 해왔어도 큰 문제 없었다’는 관리자의 ‘안전리더십’ 부재는 작은 변화에도 언제든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행동심리학자 스콧 갤러는 “안전관리는 인간의 본성과의 싸움이다.” 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안전에 있어서만큼은 익숙함과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버리고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안전을 위한 우리를 위한 작은 변화가 우리의 행복을 지켜줄 것이다.

곽상훈 안전보건공단 경기지역본부 경영총괄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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