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 외의 출생자는 인지를 통해 생부와 사이에 법률상 친자 관계를 인정받을 수 있고(민법 제855조 제1항) 생부가 사망했을 때 그의 상속인으로서 상속을 받을 수 있다. 인지는 자의 출생 시에 소급해 효력이 생기지만 제3자가 취득한 권리를 해하지 못한다(민법 제860조). 따라서 생부가 사망해 이미 상속이 개시된 이후 인지 또는 재판의 확정에 의해 공동상속인이 된 자가 상속재산의 분할을 청구하는 경우, 이미 다른 공동 상속인이 분할 기타 처분을 한 때에는 그 상속분에 상당한 가액의 지급을 청구할 권리가 있을 뿐이다(민법 제1014조).
즉 다른 공동상속인이 이미 생부의 상속재산을 분할하거나 제3자에게 처분을 한 이후 인지 또는 재판의 확정에 따라 상속인이 된 사람은 다른 공동상속인에 의해 이미 이뤄진 상속재산분할이나 처분의 효력을 다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생모’에 대해서는 위와 다른 법리가 적용된다. 혼인 외의 출생자와 생모 사이에는 인지나 출생신고와 무관하게 자의 출생으로 곧바로 법률상 친자관계가 인정되는 것이다. 우리 법원도 혼인 외 출생자와 생부의 경우와 달리 혼인 외의 출생자와 생모 사이에는 생모의 인지나 출생신고를 기다리지 아니하고 자의 출생으로 당연히 법률상의 친자관계가 생기고, 가족관계등록부의 기재나 법원의 친생자관계존재확인판결이 있어야만 이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대법원(2018년 6월19일 선고 2018다1049 판결 참조)은 본래 인지를 요하지 아니하는 모자관계에는 인지의 소급효 제한에 관한 민법 제860조 단서가 적용 또는 유추 적용되지 않으며, 상속 개시 후의 인지 또는 재판의 확정에 의해 공동상속인이 된 자의 가액지급청구권을 규정한 민법 제1014조를 근거로 자가 모의 다른 공동상속인이 한 상속재산에 대한 분할 또는 처분의 효력을 부인할 수 있고, 이는 비록 다른 공동상속인이 이미 상속재산을 분할 또는 처분한 이후에 모자관계가 친생자관계존재확인판결의 확정 등으로 비로소 명백히 밝혀졌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이처럼 생모가 사망한 경우 그 혼인 외의 자는 다른 공동상속인이 자신을 배제하고 상속재산을 분할하거나 제3자에게 처분을 한 경우 그 효력을 부인할 수 있다. 위 대법원 판결은 거래의 안전을 침해하는 면이 있을 수 있으나, 혼인 외의 출생자와 생모 사이에는 인지와 무관하게 자의 출생으로 당연히 법률상의 친자관계가 발생함을 명백하게 밝혔다는 점에서 합당한 판결이라고 생각된다.
이준행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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