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 근로관계와 소멸시효

민법(제162조 1항)에 따르면 채무의 소멸시효는 원칙적으로 10년이다. 예컨대 주택을 매도한 사람이 매수인으로부터 대금을 전액 지급받고서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소유권을 이전하지 않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도 매수인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10년이 경과하면 소멸시효가 완성하고 매수인은 더 이상 주택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사실관계를 조금 변경해 보자. 위 사안에서 매도인이 의무 이행을 차일피일 미루던 중 그의 실수로 주택이 불에 타버렸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매수인은 매도인의 채무불이행을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취득하게 되는데 이 손해배상청구권도 10년의 소멸시효에 걸리게 된다.

그런데 상법(제64조)은 위 원칙에 대한 중대한 예외를 설정하고 있다. 즉 상행위로 인한 채권의 소멸시효는 10년이 아니라 5년으로 단축된다. 따라서 설비공급 계약에 따라 특정 기계를 공급해야 하는 상인의 채무는 5년의 소멸시효에 걸린다. 그 기계가 소실됨에 따라 매수인이 취득하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도 5년이다.

상인(사용자)이 근로자를 채용하는 행위도 상행위에 해당한다. 그런데 사용자의 의무는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의무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즉 사용자는 근로자가 노무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생명, 신체,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인적·물적 환경을 정비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하는 보호의무를 부담한다. 이러한 의무는 근로계약서에 명문으로 기재되어 있지 않더라도 인정되는 의무이다. 따라서 어떤 근로자가 공장에서 근로를 제공하던 중에 공장 설비의 오작동으로 인해 부상을 입었다면, 사용자는 그 근로자가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 경우 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도 위 상법의 원칙에 따라 5년의 소멸시효에 걸린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법원(2021년 8월19일 선고 2018다270876 판결)은 여기에 반대한다. 즉 대법원은 근로계약 관계에서 사용자의 보호의무 위반에 따른 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원칙에 따라 10년의 소멸시효기간이 적용된다고 봤다. 상법이 5년이라는 짧은 시효를 정한 것은 법률관계를 신속하게 해결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며, 이는 대량·정형·신속이라는 상거래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사안은 근로자의 생명, 신체, 건강이 침해됨에 따른 손해의 전보에 관한 문제로 이는 대량·정형·신속이라는 상거래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

이러한 논리는 정반대의 사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근로자가 회사의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러 회사에 손해를 끼친 사안에서도, 대법원(2005년 11월10일 선고 2004다22742 판결)은 근로자가 근로계약에 따른 주의의무를 위반함에 따라 발생한 손해의 배상 문제는 정형적인 또는 신속하게 해결할 필요가 있는 상거래와 무관하다는 근거에서 그 손해배상청구권은 본래의 원칙으로 돌아가 10년의 소멸시효가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김종훈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