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전국평검사회의도 이제는 권위·구태다

검찰 위기마다 전국평검사회의
명분은 국민, 실상은 검찰 이익
검수완박 여론 결집, 안 어울려

검사를 ‘영감님’이라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아직도 그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검사라는 직업에 대한 경외(敬畏)였을 게다. 직책에 대한 존경심, 또는 기소독점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게다. 왜 안 그랬겠나. 검사 한 명이 독립된 기관이다. 그런 검사들이 한 자리에 모일 때가 있다. 거기서 동일한 주제를 토론하고 의견을 낸다. 그 자체로 대단한 의미다. 거기서 주는 중량감이 크다. 현안(現案) 당사자들이 받을 압박감도 크다. 검사 위력이 극대화하는 모임이다.

흔치 않은 일인데, 그제 또 열렸다. 철야 회의를 거친 뒤 입장문을 냈다. ‘검수완박’에 대한 검사들의 반박이다. 중요 범죄로부터 국민 보호가 어려워진다고 했다. 수사 과정의 과오와 인권 침해를 바로 잡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범죄 방치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선진 민주 국가도 검사의 수사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기소 독점을 규정한 헌법에 반할 소지가 있다고 했다.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적절한 반박이다. 옳은 법률 해석이다.

검찰의 ‘모임’은 앞서도 있었다. 8일과 18일 전국고검장들이 한 데 모였다. 서울고검장, 수원고검장, 대전고검장, 광주고검장, 대구고검장, 부산고검장이 다 참석했다. 중간 간부인 부장검사 회의도 20일 열렸다. 각급 청을 대표하는 부장검사급 명이 참석했다. 최고위 간부급-고검장-, 중간 간부급-부장검사-, 평검사급 모임이 모두 열렸다. 동일한 현안을 두고 검찰의 각 계층이 다 나선 셈이다. 검수완박에 대한 검찰의 반발·우려가 얼마나 큰 지 엿볼 수 있다.

난 검수완박을 반대한다. 국론 분열이다. 명명부터 그렇다. 여권이 검찰 개혁이라고 말한다. 검수완박이라고 쓰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어딜 봐도 검수완박이다. 개정의 목표가 지향하는 바도 옳지 않다. 원전 등 사건이 검찰에 있다. 현재 대통령이 연관됐다고 얘기된다. 여기서 검찰이 손을 떼라는 개정이다. 대장동 등 사건도 검찰에 있다. 전 대통령 후보가 연관됐다고 얘기된다. 여기서도 손을 떼라는 것이다. 개혁이라고 봐 넘기기 어렵다. 내 눈에만 그렇겠나.

하지만 그 해법을 검사 회의로 보진 않는다. 평검사회의는 더 그렇다. 역대 평검사회의가 남긴 추억이 그렇다. 지금까지 여섯 번 있었고, 이번이 일곱 번째다. 첫 번째 평검사회의는 2003년이었다. 노무현 정부, 강금실 법무 장관 때다. ‘기수 파괴’ 방침에 반발한 회의였다. 2005년에도 있었는데, 검찰 수사의 증거 능력을 제한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화근이었다. 2011, 2013년, 2020년 평검사회의도 있었다. 검찰 또는 총장 권한과 관련된 집단 행동이었다.

‘국민을 위하려’라는 전제는 매번 붙었지만 속은 검찰조직 얘기였다. 검사 권한을 줄이거나, 자율권을 줄이려 할 때 모였다. 여섯 번의 평검사회의가 예외 없다. 그러면서 국민 눈에 남은 모습이 있다. ‘검찰은 손해를 보지 않는 집단이다’ ‘불이익 앞에서는 무섭게 뭉친다’. 그렇게 해서 매번 내려진 결론도 있다. ‘결국 통치권도 검찰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검사들은 부인하겠지만, 이게 국민 다수에 남은 전국평검사회의 기억이다.

지금 상대는 국회다. 입법 기관이다. 180석은 국민이 준 힘이다. 그 힘을 쓰겠다는 거다. 거기에 위법은 없다. 이에 맞서는 것도 절차와 국민에 의해야 한다. 평검사회의는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다분히 위력적이다. 심지어 권위적 구태까지 섞여 있다. 이러니 되레 ‘검수완박論’ 덫에 걸려드는 것이다. 그 숱한 증명이 어제 오늘 댓글에 있다. ‘검찰의 특권 의식이 또다시 시작됐다’ ‘검수완박 해야 할 필요성이 이로써 확인됐다’…. 평검사회의가 원치 않았을 효과다.

율사(律士)가 여전히 다수인 국회다. 국회 설득에 최선을 다했는가. 위헌(違憲)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위헌제청 절차는 준비하고 있는가. 여론(輿論) 다수가 검찰 편에 있다. TV·신문을 통한 설득전은 펴 봤나. 국민 눈에 별로 보이는 게 없다. 그날 입장문에 이런 게 있었다.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겠다.” 맞다. 그렇다면 투쟁의 방식도 2022년 국민 눈 높이에 맞춰야 한다. ‘영감님들’ 1천명 모이는 평검사회의는 아무리 봐도 그런 눈높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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