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건축 공학을 배울 때 VE(Value Engineering, 가치공학)란 용어를 접했다. 이는 건설안전과 성능에 있어서 매우 의미가 있고, 공부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건설업은 다변하는 자연환경 속에 노출된 상태에서 사람의 손으로 작업하는 특성을 가지다 보니 제조업보다 효율성 관리가 어렵고, 위험성이 따르니 안전과 품질 확보, 생산성 향상과 이익 창출은 결코 쉽지 않은 산업이다. 따라서 최근 건설현장의 중대 재해나 결함 문제, 원자재 부족과 가격 폭등의 사회 이슈가 떠오르면서 건설 VE는 설계·시공 단계에서 안전성과 성능 향상, 하자 발생 제로를 목표로 신중하게 다뤄지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건설공사에서 VE는 ‘설계 경제성 검토(VE 활동)’라고도 부른다. VE 활동의 주목적은 시설물의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이 가치는 기능과 비용의 균형으로 측정되고, 이때 비용은 생애주기 비용(LCC; Life Cycle Cost)으로 계산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총공사비 100억원 이상인 건설공사의 기본설계 및 실시설계에서, 시공 중 총공사비 또는 공종별 공사비의 10% 이상 조정하는 설계 변경에서, 총공사비 100억원 미만인 건설공사에서 발주청이 인정하는 설계에서 ‘설계 경제성 검토’를 통해 기능을 유지하거나, 높일 수 있을 때 비용 절감을 승인하는 제도다. 하지만 지금의 VE 사례를 보면 이러한 실질적 목적에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즉 기능 감소 여부를 검토하지 않은 일방적 공사비 절감의 설계변경은 싼 자재 사용을 유도하게 되고, 이는 기능 결함에 의한 주기적 보수로 최초 공사비의 약 3∼5배의 유지관리비 지출로 이어진다. 결과적으로 생애주기 전체 비용 상승, 시설물 가치와 기업 신뢰도 하락이라는 실패한 VE로 전락한다.
빈번한 실패 사례로 부적합한 방수설계 VE에 의한 시설물 구조체 누수 사고를 들 수 있다. 누수 사고는 시설물의 장기 내구수명 안전성 감소, 사용 불안과 불편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중대 결함이지만, 발주자·설계자·시공자·사용자는 붕괴나 사망과 같은 재해 수준의 문제로 보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오랜 세월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주택 등 수많은 공공 및 민간 시설물이 준공 후 주인(사용자, 발주처)에게 넘겨지면 그 후부터 누수로 인한 민원과 손해 배상 분쟁이 시작된다. 그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설계단계에서 미숙한 VE 활동 탓으로 본다. 공공시설 공사 VE에서는 방수 설계가 공사비 절감용 VE 대상이 됐고, 누수의 심각성을 경험한 설계자의 강화된 설계서는 공사비를 증가시킨 부적합 설계보고 기능이 떨어지는 저가 공법으로 설계 변경을 지시한다. 결국 지어진 시설물은 물이 새고, 하자 분쟁으로 전개된다. 그래도 부동산 값이 오르니 개선의 의지와 시급성은 뒤로 밀리고, 불편과 손해를 당하는 사람만 항변하는 실패한 VE 활동의 슬픈 현실이다.
진정한 VE 활동은 기능 저하를 허락하지 않아야 한다. 공사비를 깎고자 한다면 반드시 기능 유지 혹은 기능 감소 여부를 확인하고, 검증해야 한다. 이를 판단하지 못하는 VE는 안전과 품질을 담보하지 못하는 위험한 VE 활동이며, 중대재해 원인인 중대 결함을 제공하는 무책임한 행위임을 인식해야 한다.
오상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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