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문, 삶의 길잡이

image

과학 문명이 발달한 20세기 이후에는 그 무엇보다 수많은 정보가 중요하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많은 길, 다시 말해 수단이 필요하다. 그 길, 수단에 대한 안내자가 곧 정보다. 삶의 수단으로서의 다양한 정보를 쉽게 접하기 위해서는 신문이 그 무엇보다 유익하다. 다시 말해 그때그때 시기적절하게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는 수단이 곧 신문이다. 신문은 그런 훌륭한 스승이자 좋은 친구다. 스승이자 친구인 신문이 이른 새벽이면 현관문을 두들기며 아침 단잠을 깨운다.

신문은 하루 24시간 기자들이 발이 부르터라, 눈알이 빠져라, 뛰고 또 뛰며 찾아 낸 정보를 단어 하나, 용어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고치고 또 고쳐 윤전기를 돌려 찍어 낸다. 그렇게 만들어진 신문이 화물 자동차에, 전동차에, 승용차에 그리고 오토바이에 실려 독자의 손에 전달돼 읽힌다. 본래 신문의 기능은 새로운 소식을 신속하게 전하던 데 있었다. 그러던 것이 20세기 중 후반 이후부터는 전파를 이용한 각종 통신기기의 발달로 시시각각 전해지고 있다. 신문이 전하는 소식은 새로운 것이 아닌 뒤늦은 것으로 독자 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제인가부터 과거 중대 정보를 현 시대와 비교, 분석해 알리며 신지식과 미래를 예측한 폭넓은 자료를 제공하는데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이제 신문은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스승으로 삶의 길잡이가 됐다. 그래서 신문을 열심히 읽어야 한다.

과학문명이 세상을 날로 변화시키는 21세기 현대에는 신문의 사명이 바뀌고 신문을 읽는 목적 또한 바뀌었다. 20세기 이후 현대사회의 교육과 배움은 학교에서 지식을 전달하고 기술을 가르치는 교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아니며, 학교라는 시설에서만 배우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에겐 학교에서 선생으로부터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신문이다.

현대 문명이 급속도로 바뀌고 특히 과학의 발달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이 변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 문명이 변한 것만큼 배워 깨우쳐야 한다. 그 배움을 부모, 교사, 친구에게 얻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신문이다. 그래서 신문을 읽어야 한다. 신문을 읽되, 읽을 신문을 잘 선택해야 한다.

신문 내용의 다양성이나 신속성도 중요하지만 내용의 정확성과 충실성이 확보돼 독자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신문 발행자의 사명이다. 신문발행자는 사실과는 달리 내용이 호도되거나 과장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고의가 아닌 과실이거나 무지라도 불명확한 정보를 제공해서도 안 된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내용을 변질·왜곡해서는 안 된다. 정확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고 훌륭한 스승이 된다.

신문은 생필품을 생산·판매하는 장사가 아니다. 그래서 발행자의 책임이 더욱 중요하다. 독자는 그렇게 발행된 신문을 많이 읽어야 한다. 신문에서 배우고 터득한 지혜로 밝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삶의 길잡이인 신문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정규 문학평론가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