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생후 7개월된 아이를 친정 부모에 맡기고 가버렸고, 그 때부터 조부모가 외손자를 양육해 왔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를 돌보지 않고 서로 교류도 없었다. 아이는 조부모를 부모로 알고 성장했고, 가족이나 친척, 주변사람들도 조부모를 아이의 부모로 대했다. 한편 친생부모도 조부모의 입양에 동의했다. 조부모는 아이를 아들로 입양할 수 있는가.
민법은 조부모가 미성년의 손자녀를 입양해 양부모가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 않으므로 법률상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할 수 있다. 그러나 조부모의 미성년 손자녀 입양은 이미 조손의 혈연관계가 존재하고 입양 후에도 양부모와 조부모의 친족관계가 병존하게 된다는 점에서 법정 친자관계의 기본적인 의미에 부합하지 않는데다가, 조부모가 입양사실을 감추고 친생부모인 것처럼 양육하기 위해 하는 비밀 입양은 향후 자녀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적지 않는 등 문제점이 있다.
법원은 조부모의 입양으로 가족의 내부 질서와 친족관계에 혼란이 초래될 수 있더라도, 입양을 허가하기 위해서는 당해 입양에 관한 구체적 사정을 충분히 살펴본 후에 입양이 아이의 복리에 더 이익이 된다면 입양을 허가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말하는 구체적인 사정이란 무엇인가. 우선 입양을 허가하기 위해서는, 조부모가 단순한 양육을 넘어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형성하려는 실질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입양의 주된 목적이 부모로서 자녀를 안정적·영속적으로 양육·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친생부모의 재혼이나 국적 취득, 그 밖의 다른 혜택 등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친생부모의 입양동의가 확실한 것인지 확인해야 하고, 조부모가 양육능력이나 양부모로서의 적합성과 같은 일반적인 요건을 갖추는 것 외에도, 자녀와 조부모의 나이, 현재까지의 양육 상황, 입양에 이르게 된 경위, 친생부모의 생존 여부나 교류 관계 등에 비추어 조부모와 자녀 사이에 양친자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을 기대할 수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러한 사정을 종합, 조부모의 입양이 자녀에게 도움이 되는 사항과 우려되는 사항을 비교·형량해 개별적·구체적인 사안에서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판단해야 한다. 입양되는 자녀가 13세 미만인 경우에도 어느 정도의 사리분별 능력이 있으면, 적절한 방법으로 자녀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재철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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