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린체는 비록 정복자 코르테스의 통역사와 정보원 노릇을 했지만, 그녀로서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코르테스의 정부가 됐지만, 이것 또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코르테스에게 말린체의 통역과 원주민 사회에 관한 정보가 없었다면 에스파냐의 아스텍 정복 역사는 어느 정도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 말린체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말린체는 두 시대가 충돌하는 불행한 시점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비련의 여인이다. 멕시코에서 그녀는 ‘부재하면서도 항상 현존하는 사람’(El personaje austente siempre presente)이라는 말로 그녀의 이미지를 함축성 있게 표현하고 있다.
식민시절 에스파냐 침략자는 하얀 피부를 가진 자신들의 후예 크리오요(Criollo)가 원주민의 피가 섞인 메스티소보다 혈통적으로 우수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멕시코혁명 이후 주인은 이제 메스티소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메스티소의 이미지는 혁명 후 급격하게 바뀌었고, 혁명 정부는 메스티소를 통합된 국가의 전형적인 국민상으로 제시하며 새로운 혁명 체제의 이데올로기적 상징으로 삼았다. 당시 혁명 정부의 지도자들은 원주민의 육체와 백인의 지성이 결합해 원주민의 적자생존 힘과 백인의 적절한 진보 성향이 조화를 이룬 것이 메스티소라고 극찬했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호세 바스콘셀로스(José Vasconcelos)가 메스티소를 미래 국민문화의 담지자이며 ‘우주적 인종’이라고 추켜세웠던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박태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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