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플러스] 재물손괴의 정당행위 성립 여부

공동주택은 입주자 등을 대표해 관리에 관한 주요사항을 결정하기 위한 자치 의결기구로 입주자대표회의를 구성한다. 그런데 대단지 아파트에서 입주자대표회의의 구성원들이 파벌을 구성해 다툼을 벌이는 경우 장기간에 걸친 법률 분쟁으로 삶의 터전이 피폐해 질 수 있다. 이러한 분쟁을 예방하고 신속히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실제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일부 동대표들이 제안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 대한 회장해임 안건이 절차와 규정에 맞지 않음을 이유로 거절됐다. 이에 관리소장이 동대표들의 요구에 따라 회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당 안건을 포함한 입주자대표회의의 소집을 알리는 공고문을 게시했다. 회장이 그 공고문을 제거하자 동대표들이 회장을 재물손괴죄로 형사고소해 형사 재판이 진행됐다.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위 사례의 경우 회장의 공고문 제거 행위가 재물손괴죄의 범죄구성 요건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이를 형법 제20조가 규정하는 정당 행위로 볼 수 있다면 위법성이 조각되어 범죄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바로 위 형사재판 과정에서도 공고문 제거 행위가 정당 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라 치열한 공방이 전개됐다.

이에 대한 우리 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입주자대표회의의 정당한 소집권자인 회장이 그의 동의나 승인 없이 위법하게 게시된 공고문을 발견하고 이를 제거하는 것은 그에 선행하는 위법한 공고문 작성 및 게시에 따른 위법 상태의 구체적 실현이 임박한 상황 하에서 그 행위의 효과가 귀속되는 주체의 적법한 대표자 자격에서 그 위법성을 바로잡기 위한 조치의 일환으로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범위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 행위이다. 또한 이러한 행위는 공동주택의 관리 또는 사용에 관해 입주자 및 사용자의 보호와 그 주거 생활의 질서 유지를 위하여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의 대표자로서 공동주택의 질서 유지 및 입주자 등에 대한 피해 방지를 위해 필요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사회통념상 용인 될 수 있는 피해를 발생시킨 경우에 지나지 아니한다.

대법원은 이상과 같은 논의를 전제로 입주자대표회의는 회장이 소집하도록 규정돼 있고, 공고문이 계속 게시될 경우 적법한 소집권자가 작성한 진정한 공고문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게시판의 관리 주체인 관리소장이 공고문을 게시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소집절차의 하자가 치유되지 아니하고, 바로 그 다음 날이 공고문에서 정한 입주자대표회의가 개최되는 당일이어서 시기적으로 달리 적절한 방안을 찾기 어려웠던 점 등을 고려할 때, 공고문을 제거한 회장의 행위는 정당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21년 12월30일 선고 2021도9680 판결).

박승득 변호사 / 법무법인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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