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며 읽는 동시] 겨울밤

겨울밤

                        -진순분

 

사락사락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는 밤

찹쌀떡ㅡ

메밀묵 사ㅡ려!

골목 소리

멀어진 밤

순이는

일기 쓰다가

스르르

잠이 드는 밤

 

겨울밤 적막을 깨는 정겨운 소리

낮의 온갖 소음들이 자취를 감춘 겨울밤.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기조차 한 겨울밤. 희디흰 눈만이 내려와 지상을 한 장의 도화지로 수놓는 그 겨울밤의 풍경을 그림을 그리듯 보여주는 동시조(童時調)다. ‘찹쌀떡-/메밀묵 사ㅡ려!’. 적막한 거리를 깨우는 그 반가운 소리. 그건 단지 음식을 팔려는 소리라기보다는 집집의 안부를 묻는 인사요, 사람의 소리였다. 이 반가운 사람의 소리가 언제부터 그쳤을까? 필자는 겨울밤에 누나를 깨워 찹쌀떡을 사 먹던 일이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하기만 하다. 그 몰캉한 떡 속에 들어 있던 달큼한 팥고물의 맛! 입 주위가 허예가지고는 서로 쳐다보며 웃고 또 웃던 누나와 필자는 어느새 80를 훌쩍 넘은 노인이 되었다. ‘순이는/일기 쓰다가/스르르/잠이 드는 밤’. 골목 저 너머로 사라지는 찹쌀떡 장수와 메밀묵 장수의 소리를 들으며 순이는 일기를 적는다. 오늘 낮에 있었던 친구들과의 즐거웠던 일을 하나하나 적는다. 그러다가 저도 모르게 스르르 잠에 떨어진다. 연필을 꼭 쥔 채. 시인은 밤이 되어도 좀처럼 고요해질 수 없는 이 도시 속에서 저 평화로운 지난날의 겨울밤을 그리워하고 있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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