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동호인이나 동창 카톡방에서 정치 논쟁하는 것이 금기였다. 논쟁으로 서로 감정만 상하는 경우가 많아 상호 인격을 존중하는 배려에서 나온 궁여지책이었다. 그러나 이런 침묵이 오래 고착화되면서 예기치 않은 역작용이 생겼다.
동그라미는 동그랗다고, 세모는 세모라고 말해야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가는데 내 편이 동그라미를 세모라고 말했다면 그냥 방조하는 세태가 되면서 정치 세력의 장단에 맞춰 수학 문제도 정치로 푸는 바보들의 행진을 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물건을 팔았는데 손님이 위조지폐를 주고 갔다면 당신은 가짜 돈으로 다시 다른 물건을 사 오겠는가. 화폐는 시장의 기본 질서이고 위조지폐는 사회 근간을 흔드는 일이니 바로 멈춰야 한다. 위조 투표지로 당선된 선량도 위조지폐로 산 상품이나 마찬가지다.
재작년 총선이 이상하다고 120여 곳의 선거 무효소송이 있었다. 선거소송은 6개월 안에 처리하도록 법으로 정해졌건만, 1년 반이 넘도록 겨우 5곳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고 재검표 자료의 감정과 판결도 한없이 지연되고 있다.
재검표에서 나온 비정상 투표지들에 대해 피고 선관위는 ‘도장 안의 글자’가 빨갛게 뭉그러진 것은 도장 불량으로 잉크가 과다 분출되거나 관리관이 자동충전 도장인 줄 모르고 스탬프에 찍어서 뭉개졌다고 지난달 중앙지에 해명했다. 다음날 원고 민전의원은 국회 헌정회관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이대로 좋은가?’란 토론에서 한 투표소에서 투표관리관이 전체 투표자 1천974명 중 1천번을 ‘송도 2동 제6 투표소 관리관의 인’이란 글자가 뭉개지도록 온종일 연속해 찍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반박했다.
도장은 불량이고, 관리관도 천 번을 부실하게 찍고 천 명의 투표자도 못 보고 0.1%의 오차만 허용한다는 전자개표기도 천 번을 통과하고 수십 명의 개표사무원과 개표참관인도 지나치고 1년 후 재검표에서야 279표의 오차를 찾아냈다니. 이토록 관리가 허술했단 말인가. 대법관의 분별심마저 부실하지 않길 고대한다.
선관위 말로 원상회복 종이를 써서 접혔던 게 빳빳하게 펴졌다는 투표지 다발들, 투표장에서 한 장씩 프린트한 것이 아니라 밖에서 인쇄·재단한 듯 자투리가 옆에 붙은 사전투표지들을 보고도 가짜를 판별하지 못한다면 초중등 9년의 의무교육과 3년의 무상고등교육은 공염불이 된다. 어느 당을 지지하든 위조를 밝히는 것은 모두의 문제이다. 대법원은 남은 재검표 백여 곳을 즉각 실시하여, 개표방송처럼 수천만의 눈이 검증하자.
이흥우 해반문화사랑회 명예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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